[슬라맛빠기! 인도네시아] 지평선과 맞닿은 동쪽 끝 밀림… “한국 회사 덕분에 마을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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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맛빠기! 인도네시아] 지평선과 맞닿은 동쪽 끝 밀림… “한국 회사 덕분에 마을이 생겼어요”

입력
2019.12.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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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최(最)동단 라디오 방송국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인도네시아 최동단 방송국인 파푸아주 보벤디굴 지역의 아시키 라디오 방송국의 전 직원이 단출한 스튜디오에 모였다. 왼쪽은 우니 총괄 DJ, 오른쪽은 사투만 방송국 대표.

마이크 3개, 헤드폰 2개, 의자 3개, 탁자 1개, 컴퓨터 1대 그리고 벽면엔 채널 주파수를 적은 간판 하나. 넓이 6㎡ 라디오 방송국을 채운 물건은 단출했다. 총괄 DJ 우니(29)씨는 “이 곳 아이들의 행복과 미래가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때론 보이지 않는 게 큰 법이다.

2017년 9월 2일 첫 전파를 쏜 주파수 FM 107.7, 아시키(Asiki) 라디오 방송국은 반경 20㎞에 사는 5,000명 남짓 주민의 24시간 정보통이자 쉼터다. 분실물을 찾아주는 사소한 일부터 교육ㆍ의료ㆍ치안ㆍ행정 등 생활에 꼭 필요한 얘기를 전문가들이 직접 전한다. 오전 7시~오후 9시 정규방송 이외엔 한국 가요 등을 틀어준다. 전기도 통신도 두절된 암흑천지 밀림을 차로 달리던 기자 일행에게 라디오 방송은 실제 든든한 길잡이였다. 사투만(42) 대표는 “우리 방송국을 통해 라디오 방송을 처음 접한 주민들이 많아 라디오를 사주기도 했다”라며 “이젠 모두에게 없어선 안될 존재”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 아시키 라디오 방속국 위치. 그래픽=송정근 기자

아시키 라디오 방송국은 인도네시아 국토 동쪽 끝 뉴기니섬의 파푸아주(州)에서도 가장 동쪽 끝에 있다. 자카르타에서 파푸아주 남쪽 도시 머라우케(Merauke)까지 대기시간 포함 비행기로 9시간, 다시 북쪽을 향해 차로 5~6시간(약 325㎞) 달려야 닿는다. 끝없는 밀림에선 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다. 현재 250㎞ 정도가 포장됐지만 예전엔 3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다리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지금도 치안이 불안하고 제반 시설이 미비해 밤엔 오갈 수 없는 길이다. “한번 (방문)이면 족하다”는 우스개가 온몸으로 실감됐다.

높이 16m 전망대에서 바라본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아시키의 코린도그룹 팜오일 농장. 서울 넓이의 두 배다. 코린도그룹은 전 세계 기업들 가운데 파푸아 내륙에 사실상 처음 진출한 기업이다.

인도네시아 최(最)동단 방송국인 아시키 라디오 방송국은 한인 기업이 세웠다. 오지 중에 오지라 현지 기업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1993년 파푸아에 사실상 최초로 진출한 한상(韓商)기업 코린도그룹이다. 그 뒤에야 현지 기업들도 속속 들어왔다. 코린도그룹이 보유한 파푸아 팜오일 농장은 서울시 넓이(605.5㎢)의 두 배(1,200㎢)에 달한다. 현지인 1만명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해당 지방세 수입의 30~50%를 책임지고 있다. 오지의 개척자로 사반세기 넘게 파푸아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현지인 직원이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아시키의 코린도그룹 팜오일 생산 공장에서 작업하고 있는 모습.

올해가 설립 50주년인 코린도그룹은 양국 국가 명칭이 모두 담긴 회사 이름(Korindo=Korea+Indonesia)처럼 한국인 40여명과 인도네시아 각지에서 온 이주민, 밀림에서 나온 파푸아 원주민이 어우러진 독특한 공동체도 시나브로 일궈냈다. 아시키 지역의 마을과 학교, 시장은 코린도그룹 진출 전엔 없었다. 라디오 방송국과 같은 날 개원한 아시키 병원은 공동체의 구심점이다. 코린도그룹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ㆍ코이카)이 함께 만든 이 병원은 올해 인도네시아 전체 1차 의료기관 평가에서 2위를 차지했다.

피르만 아시키 병원장이 고열에 시달리는 원주민 아기를 진료하고 있다.

피르만(45) 병원장은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실, 치과, 산부인과, 내과, 응급실, 입원실 18병상 등을 갖추고 산모 교실을 비롯한 주민 의료교육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균 감염으로 고열에 시달리는 생후 8개월 에카를 병원에 데려온 베르나데타(26)씨는 기자에게 “병원이 가까워서 좋다”고 말했다. 제일 가까운 도시 병원은 100㎞ 가까이 떨어져 있다. 코이카에서 일하다 코린도그룹으로 옮긴 이용민(31)씨는 “인도네시아 전체 1위였던 영유아 사망률이 병원 덕에 많이 줄었다”면서도 “앞으로 코이카 지원이 끊겨 오지 진료 및 외부 왕진은 힘들 것 같다”고 걱정했다.

코린도그룹과 코이카가 힘을 합쳐 세운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보벤디굴 지역의 아시키 병원. 올해 1차 의료기관 평가에서 인도네시아 전국 2위에 올랐다.

아시키 공동체에서 80㎞쯤 떨어진 곳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2011년 인수한 현지 법인 ㈜비아(PT. BIA)의 팜오일 농장(340㎢)이 있다. 역시 한국인 11명과 현지인 직원 4,000명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공병선(52) 법인장은 “식인종이 살아서 위험하다는 등 잘못된 소문에 의료진들이 오기를 꺼렸는데, 고대안산병원이 흔쾌히 2년 전부터 농장 내 보건소에 매년 의료진을 파견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머라우케에 있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의 현지 법인 비아 농장 관계자들이 팜오일 생산 공장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실 팜오일 농장은 최근 환경단체들의 표적이다. 토지 산도 증가, 삼림 방화 등 천연 열대림을 훼손하고 원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빈자의 기름’이라 불리는 팜오일의 급성장에 놀란 유채유 등 다른 식물성 기름 생산국들, 특히 유럽의 정치 공세라는 의견도 있지만 팜오일 농장의 확산이 환경에 부담을 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지인 직원이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아시키 코린도그룹 팜오일 농장의 12m 높이 팜나무에서 열매를 따고 있는 모습.

5년간 현지에서 원주민들과 동고동락한 김영수(60) 코린도그룹 파푸아사업부 관리지원실장은 “환경 보호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기업의 노력에는 귀를 닫고 부정확한 자료에 기대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매도하는 건 억울하다”고 했다. “이 곳 원주민들도 문명을 받아들이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욕구가 있다. 이들을 원시 상태로 두는 게 무조건 옳은 일인가. 우리나라 기업 진출 후 개선된 교육ㆍ의료 환경에 만족하는 주민들을 보러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제발 현장에 왔으면 좋겠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아시키 마을 아이들이 속이 터져 바람이 빠진 축구공으로 축구를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아시키 마을 아이들이 속이 터져 바람이 빠진 축구공을 보여주고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체감온도 40도의 무더운 날씨에서도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데 축구공이 유독 눈에 밟혔다. 아무리 세게 차도 공은 힘없이 푹 떨어져 굴러가는 시늉만 했다. 자세히 보니 바람이 빠진 것도 모자라 속이 다 터져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즐겁다. 코린도그룹이 조성한 ‘아름다운 아시키 공원’엔 연인과 가족들이 노닐고 있었다. 원주민들이 가끔 동물들을 잡아먹어도 코린도그룹은 경비를 세워 공원 안 동물원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아시키 마을에 있는 '아름다운 아시키 공원'에서 연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근처 시장 좌판에 앉아 토종 열매들을 사라고 손짓하던 원주민 넬라(39)씨에게 한국 기업이 들어오니까 어떠냐고 물었다. “마을이 생기고 사람들이 많아지고 친척들이 한국 회사에 취업해서 좋다.” 복잡한 사정을 파악하기엔 짧은 4박5일이었지만, 현장엔 아이들의 웃음과 시장 상인의 답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아시키에 있는 코린도 마을 시장에서 만난 원주민 상인들.

파푸아 아시키ㆍ머라우케=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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