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욱 대구아동복지센터 원장
대구아동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도현욱(48)원장은 지역에서 소문난 3대 사회복지사 가문의 3대째 복지사다.
시작은 할아버지였다. 전쟁이 막 끝난 1953년도 8월,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아동들과 상이군인, 미망인을 거둬 먹여 살리려고 생활공동체를 만들었다. 공동 생활관은 중구 대봉동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양복기술을 배웠다. 양복점을 하며 모은 집안의 땅으로 사회사업을 시작한 거였다. 계기가 있었다. 교회 부흥회에서 설교자가 “가진 사람은 복지사업을 해야 한다”는 말에 수긍해 복지사업을 시작한 거였다.
아버지의 형제(3형제)는 모두 미대를 나왔다. 하지만 두 아들은 예술과 전혀 상관없는 길을 걸었다. 셋째인 작은아버지는 학교를 이어받았고, 도 원장의 아버지인 둘째 아들은 사회사업에 뛰어들었다.
도 원장 역시 대학에서는 사회복지를 전공하진 않았다. 환경과학과를 나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2004년도에 뒤늦게 사회복지를 시작했다. 2008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법인 내 노인주간보호시설에 생활지도원으로 투입됐다.
3대가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하다 보니 복지사업의 변천이 한눈에 들어오더라고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종종 충돌했다. 할아버지는 옛날 방식을 고집하고 아버지는 새로운 법과 시대의 흐름을 따라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애쓴 까닭이었다.
이를테면, 할아버지는 “내가 번 돈으로 꾸려나가는 자선”이라고 생각했고, 아버지는 “공공의 시스템을 구축해서 공동체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 원장은 “이 모든 것이 사회복지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할아버지 시대의 복지시설 직원들은 한솥밥을 먹는 식구였어요. 공동생활을 하는 단체의 일원이었죠. 후원 물품이 들어오면 직원들과 아이들아 나눠 갖는 식이었죠. 지금은 직원이 후원 물품에 손을 대면 큰일입니다.”
도 원장은 여기서 더 한 발짝 나가고 싶다고 했다. 보조금이나 후원금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자립형 사회복지로 나아가고 싶어한다.
“할아버지 시대는 생존을 위한 사회복지였어요.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말 그대로 죽을 수도 있는 분들이 모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극단적 빈곤은 거의 해결되었고, 복지가 삶의 질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정신적 만족과 성숙을 지향하는 사회복지인 셈이죠. 사회가 변하고 복지의 개념이 바뀐 만큼 복지시설 경영의 패러다임에도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승희 객원기자(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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