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결렬 선언에‘하루짜리 허니문’ 깨고 강 대 강 맞서
20대 국회의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 국회는 종일 몸살을 알았다. 여야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민생 법안들을 국회 본회의에 대거 묶어 둔 채 ‘협상 시도- 실패 – 재시도’를 거듭했다.
여야는 자유한국당의 9일 ‘필리버스터(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에 의한 의사진행 방해) 조건부 철회’에 따라 휴전을 맞았지만, 24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ㆍ한국당ㆍ바른미래당 등 국회 교섭단체 3당은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를 목표로 증ㆍ감액 심사를 벌였으나, 11월 말 이후 깜깜이ㆍ졸속으로 심사해 온 정부 예산안 최종 규모를 하루 만에 결정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4+1’ 협의체(바른미래당ㆍ정의당ㆍ민주평화당+가칭 대안신당)가 비밀리에 작업한 예산안 수정안의 강행 처리를 시사하며 한국당을 압박했다. 한국당은 ‘예산안 합의’를 전제로 전날 거둬들인 ‘필리버스터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며 여권을 자극했다. 이에 국회에는 폭풍전야의 전운이 감돌았다.
‘파국’의 조짐은 10일 오전 9시쯤 포착됐다. 밤새 정부 예산안을 심사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3당 간사인 민주당 전해철ㆍ한국당 이종배ㆍ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이 ‘합의 불발’을 선언하면서다. 513조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 원안 중 한국당은 4조원, 바른미래당은 3조원을 삭감하자고 했으나, 민주당은 ‘4+1’ 협의체가 합의한 1조 2,000억원 삭감을 고수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예산안이 안건으로 잡혀 있었던 본회의는 1시간 지연된 오전 11시에서야 열렸다. 여야는 민심이 극도로 민감해 하는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등) 등 어린이 생명안전 법안 3건과 아덴만 파병연장 동의안 등 일반 안건 등 16개 안건만 표결 처리한 뒤 본회의 문을 닫고 예산안 협상에 ‘올인’했다.
여야 원내 지도부는 예산 협상장 밖에서 설전을 주고 받았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 취임 하루 만에 여야가 ‘허니문’을 자체 종료한 것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오늘 중 예산안 처리를 위한 순조로운 길이 열리지 않으면 민주당은 ‘4+1’ 공조 테이블을 통해 예정대로 오늘 오후 예산안 수정동의안을 제출하겠다”고 경고했다. 이 원내대표는 즉각 ‘4+1’ 협의체의 원내대표급 회동을 열어 ‘행동’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예산안을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지 못하는 부담과 제1 야당을 제외하고 처리하는 부담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한국당은 강력 반발했다. 한국당의 예산 증ㆍ감액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면 후폭풍이 상당할 터였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4+1’ 협의체를 겨냥해“여당이 앞문을 열어놓은 채 뒷구멍을 파놓고 있다는 으름장을 놨다”며 “여당은 여당답게 제1야당과 당당히 협상에 임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오전 본회의장에서 심 원내대표, 김재원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한국당 원내지도부가 이인영 원내대표 자리로 찾아가 대화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오후 2시 속개 예정이었던 본회의는 10일 저녁까지 개점휴업 상태였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주재로 3당 원내대표ㆍ예결위 간사가 마라톤 협상으로 최종 담판을 시도했지만, “얘기가 잘 안 되고 있다”는 말만 거푸 흘러 나왔다. 여야가 국회를 멈춰 세운 채 민생 법안들을 볼모 삼아 ‘그들만의 싸움’을 벌인 셈이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한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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