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팬심엔 국적이 없다
"첫 전철 타고 가야 하니까 새벽 3시? 아빠, 내가 깨울 테니까 반드시 일어나야 해!"
12월 6일, 아마 밤 10시쯤 되었을 것이다. 내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둘째 딸 유나는 잠자리에 들면서 신신당부했다. 나는 "내 걱정 말고 너나 제대로 일어나"라고 웃으며 화답했다. 그리고 유나와 나는 다음날 새벽 3시40분 무사히 집을 나섰다.
새벽녘 차가운 겨울바람과 우중충한 날씨도 그렇지만, JR무사시고가네이 역은 토요일이라 그런지 몰라도 아예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다. 4시 조금 넘어 첫 전철이 들어왔고, 텅텅 빈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앉자마자 졸음이 밀려와 눈을 붙인다. 유나에게는 "오쿠보 역에서 내려야 하니까 잘 기억하고 있어"라고 말해뒀다.
◇둘째 딸 등살에 ‘트와이스’ 이벤트에 가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유나가 "아빠 일어나. 다음이 오쿠보 역이야"라며 나를 깨운다. 유나는 "아빠 잘 때 아까 옆에 앉은 할머니가 어디 가냐고, 아빠보고 누구냐고 막 물어서 웃겼어. 내가 유괴라도 당하는 줄 알았나 봐"라며 웃는다. 아니 내 인상과 행색이 어디가 어때서. "그래서 뭐라고 답했는데"라고 묻자 "응. 1년에 한 번 있는 트와이스 오피셜 굿즈 판매 이벤트에 참가하러 오다이바에 간다고 말했어. 그러자 갑자기 아빠보고 착하대. 깔깔깔"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다. 새벽 나절부터 부녀가 법석을 떤 이유다. 원래 유나 생일은 9월 30일이다. 생일선물로 뭐 해줄까 물었는데, 12월 7일 열리는 이 트와이스 굿즈 판매 이벤트에 같이 가주면 안되겠냐고 한다. 처음에는 엄마한테 부탁했다. 하지만 아내는 다른 아이들 때문에 물리적으로 힘들다면서 아빠한테 물어보라고 말했고 유나는 이내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별 거 아니라는 투로 "알았어. 내가 같이 가 줄게"라고 대답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한일 관계가 별로 좋지 않으니까 행사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고, 예정대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보통 때와 다름없이 아침에 일어나 슬슬 가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행사가 열리는 오다이바 아오미 전시장에 도착한 시간이 아침 6시. 이벤트는 9시에 시작되니 3시간 전이다. 하지만 이미 200여명에 달하는 트와이스의 팬들이 길다란 줄을 형성하고 있었다. 대부분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소녀들, 그리고 10대 후반, 20대 초ㆍ중반의 남자들이다. 그들은 배지로 장식한 가방을 메고 있었다. 저게 뭐냐고 유나에게 묻자 "트와이스 백. 저기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 배지를 다는 거"라고 말했다. “너는 왜 안 해”라고 되묻자 "난 돈이 없잖아. 저 가방만 3,000엔(약 3만원)이야. 배지는 하나에 1,000엔 정도"라고 말한다.
그제서야 유나가 작성한 오더 시트가 떠올랐다. 메모지에 빼곡히 쓴 오늘 살 물건들. 도합 1만 5,000엔 정도 되는 그 안에는 확실히 가방과 배지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 들고 있다. 유나만 보통 가방이고, 멤버 '정연'의 배지 두 개와 열쇠고리 하나가 달랑 걸려 있다. 내가 "온 김에 사라. 내가 사 줄게. 단, 엄마한테는 굿즈가 생각보다 많아서 아빠가 트와이스 백 사줬다고 말해"라고 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 진짜!!? 최고 최고!"라며 환호성을 지른다.
◇일본인 엄마들 “다음엔 딸과 BTS 이벤트 가요”
오전 8시30분 이동이 시작됐다. 그제서야 우리가 매우 일찍 도착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행사 진행요원의 지시에 따라 전시장 입구로 이동하는데 우리가 선두그룹이다. 곡선 형태로 꺾인 언덕 위 뒷줄은 보이지도 않는다. 단순 계산으로 3,000~4,000명 정도는 이벤트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와서 기다린 셈이다.
9시 정각, 전시장의 문이 열리고 트와이스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군데군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굿즈 판매대는 작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120개로 늘렸다고 한다. 유나의 학교 친구들도 만났다. 아이들이 아직 휴대폰이 없는 관계로 전시장에 들어가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은 날뛰는데 나는 어색하게 그들의 엄마들과 인사를 나눴다. 주위를 둘러보니 확실히 그렇다. 10대 초반 팬들이 워낙 많다 보니 보호자가 올 수밖에 없고 딸 덕분에 트와이스 팬이 됐다는 어머니도 있었다. 또 딸을 통해 트와이스를 알게 됐고, 트와이스를 접하다가 다른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고 종국에는 방탄소년단의 ‘아미’가 된 열성 팬도 있었다. 그 어머니는 “오늘 내가 와 줬으니까 다음 BTS 이벤트 땐 너도 같이 가야 해”라며 열심히 딸에게 ‘아미’ 전도를 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들은 모두 일본인들이다.
◇’겨울연가’ ‘동방신기’ 이은 인기, 하지만 ‘한류’는 없다
2001년 일본에 와서 별의별 경험을 다 해 봤지만 이런 체험은 처음이다. 물론 ‘겨울연가’가 히트했던, 이른바 제1차 한류 붐이 불었을 때, 마침 기자를 하고 있었던지라 각종 이벤트를 취재하기는 했었다. 그 때도 수많은 한류 팬이 있었고 일본방송들은 이러한 열풍을 대대적,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그 한류와 지금의 이 모습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먼저 연령층이 확연히 다르다. 중년의 ‘아줌마’ 팬이 아닌 소녀팬이 대부분이다. 동방신기가 활약했던 2차 한류 붐 때도 물론 소녀 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어려졌고, 숫자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 일본 방송은 이러한 붐을 보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혐한에 가까운 뉴스들이 훨씬 더 많다. 이러한 와중에 트와이스 하나만으로 이 정도라면 BTS가 포함된 한국 아이돌 시장은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벤트 현장에서 내가 만난 소녀들은 ‘한류’라는 말 자체를 모른다고 한다. 한류를 모르는데, 그들은 한글과 일본어로 “저는 누구누구의 팬입니다”라고 쓴 종이를 자기 앞에 놓아둔다. 즉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의 굿즈를 가져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다른 멤버의 굿즈와 교환하자는 말이다. 일본어로만 써도 될 것을 굳이 한글로 써서 놓아두는 게 신기하다.
그러고 보면 유나도 그랬다. 한글을 트와이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배웠고, 내년 졸업식 때 한복을 입기로 한 것도 트와이스의 ‘정연’이 추석 때 올린 한복 사진 때문이다. 국적과 나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들은 아티스트로서, 팬으로서 트와이스를 좋아하는 것이다.
◇’한류’ 꼬리표를 뗀 한국문화, 혐한에도 끄덕 없다
지금 일본사회의 한국 문화가 바로 이렇다. 이미 국적과는 상관없이 일본 사회 깊숙이 파고 들어 정착됐다. 일본 방송이 아무리 한국 사회를 비난하는 뉴스를 내보내도 한국 드라마 편성은 꼭 한다.
수출규제 이후 오쿠보 코리아타운의 한인 커뮤니티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혀 문제 없다. 오히려 오쿠보 거리, 쇼쿠안 거리 쪽은 땅값이 작년 같은 시기보다 6% 정도 상승했다. 1층 상가의 경우 평당 임대료 3만엔이었던 것이 4만엔으로 올랐고, 반짝하다 말 것이라 예상했던 치즈 핫도그 등은 여전히 성황리에 판매되고 있다. 두 평짜리 가게 하루 매출이 15만엔이면 대체 핫도그를 하루에 몇 개나 판다는 말인가.
먹거리나 음악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에세이 ‘나는 나로 살고 싶다’는 일본어로 번역, 출간되자마자 1년 내내 종합 베스트셀러 랭킹에 올라 있다. 이 작품들에 쏟아지는 일본 사회, 특히 여성들의 찬사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을 부러워하는 리뷰들도 있지만, 보다 보편적인 개념을 다룬 것에 대한 찬사가 훨씬 더 많다.
◇한일 양국은 이미 대등하다
이런 현상들은 전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이제서야 대등한 관계가 정착되고 있다. 이 대등함이 싫은 사람들이 일본 정치권력의 최정점에 있어 마치 한일관계가 껄끄러운 것처럼 보일 뿐이고, 양국의 언론이 그러한 모습을 유독 도드라지게 다루어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도쿄에서 19년째 살면서 일본인 아내와 함께 아이 넷을 낳았고, 숱한 직업을 전전하며 일본사회를 경험해 온 나는, 지금 적어도 한일관계에 관한 한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단언한다. 앞으로 이 격주 연재물을 통해 어렴풋이 배워야 할 일본이 아니라 살면서 느낀, 있는 그대로의 일본을 소개해 볼 생각이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정연 관련 굿즈를 이리저리 펼쳐보며 연신 미소를 짓는 유나에게 “그렇게 좋냐”라고 묻자 “지금까지 아빠가 해 준 것 중에 가장 좋아. 최고야! 정말로!”라고 진심으로 기뻐하더니 갑자기 “아빠, 내년에도 같이 올 거지”라고 덧붙인다. 순간적으로 하늘이 노래지면서 편두통이 몰려왔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나도 내년에 트와이스 멤버 중 누군가의 팬이 되어야겠다.
박철현 작가
박철현 작가는 중앙대 영화학과를 졸업한 후 2001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저널리스트를 비롯해 게임플래너, 술집 주인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다 현재는 인테리어 업체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네 명의 아이를 뒀다. 일본 생활 이야기를 담은 ‘일본 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 ‘어른은 어떻게 돼’ ‘이렇게 살아도 돼’ 같은 에세이를 냈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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