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은 예산안 심사 참여 실리, 민주당 민생법안 통과 명분 챙겨
파국으로 치달을 것 같던 여야가 9일 일단 멈춰 섰다. ‘내년도 예산안ㆍ비쟁점 법안 정기국회 내 처리’라는 최소한의 국회 정상화 요건에 합의하면서다. 충돌이 예상됐던 국회 본회의에 앞서 치러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당내 비주류인 심재철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돼 필리버스터(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 방침을 조건부 철회한 게 일단 컸다.
그렇다고 여야의 충돌 여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첨예하게 갈등을 빗고 있는 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관련 법안을 두고 여야는 여전히 물러설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패스트트랙 법안을 정기국회 회기(10일) 내에 상정하지 않기로 합의는 했지만, 향후 진행될 여야 협상에서 한국당이 ‘4+1’(민주당ㆍ바른미래당ㆍ정의당ㆍ민주평화당+대안신당) 제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충돌은 10일 이후 열릴 임시국회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당 새 원내대표 등장에 협상 모드 급반전
이날 오전 9시 시작한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심재철 원내대표-김재원 정책위의장이 신임 원내지도부로 선출되면서, 그 동안 닫혔던 여야의 협상 테이블은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이 끝난 직후인 낮 12시부터 1시간 40분 동안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회동을 주재하며 합의안을 도출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예산결산위원회 간사가 민주당 간사와 함께 예산안 심사 논의에 착수하고 △한국당이 본회의 안건에 신청했던 필리버스터를 의원총회 동의를 거쳐 철회하는 중재안 덕분이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의원총회를 곧바로 소집, 지난번 본회의 안건에 대해 신청한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오후 4시 소집된 한국당 의총에서 문 의장의 중재안에 대해 ‘성급하게 받아 들인 게 아니냐’는 당 내 목소리가 나오자 기류가 변했다. 심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엔 “예산안이 합의 처리될 거라는 기대를 갖고 합의를 했었다”며 “합의가 제대로 될지, 안 될지는 협의하고 있는 예결위 간사들에게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부터 다시 가동되기 시작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3당 간사 간 협의체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경우 다시 합의를 무산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갈등 봉합? 선거법 두고 또 충돌할 수도
이날 극적 타협은 여야의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타협 덕분에 ‘정기국회 내 민생법안 통과’라는 집권여당의 의무를 다할 수 있었다. 또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정안 협상 테이블에 한국당이 참여할 기회를 줌으로써 명분도 챙겼다. 한국당 입장에선 예산안 심사 과정에 다시 참여하는 실리를 얻었다는 평가다.
하지만‘강 대 강’ 충돌의 불씨는 여전하다. 특히 쟁점인 선거법 개정안, 공수처 설치법안을 두고 여야는 내용적 합의를 전혀 이루지 못한 상태다. 심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경선에서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법안 관련)수정안을 제시하면 살펴본 후 대응하겠다”면서도 “만일 협상이 잘 안되고 공수처법이 원래의 괴물 모습 그대로라면 차라리 밟고 넘어가겠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도 반대”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공들여 만들어낸 ‘4+1’ 협상안을 한국당이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제안을 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내일 이후에도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을 유보할지는) 내일 추가로 협상이 진행되면, ‘4+1’ 내에서 공유하면서 판단할 것”이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 신설 등에 관해 이야기가 시작되면 얼마든지 협상하고 합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 결사 반대를 외치던 한국당이 전향적인 자세로 나오지 않을 경우, 한국당을 배제하고 강행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확인한 셈이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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