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가다, 이슈를 읽다] <3> 결혼이주여성, 평등한 가족으로 인정한다면
지난달 27일 충북 옥천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옥천군에는 현재 약 450명의 결혼이주여성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날 교육에 참가한 이들은 교육을 마친 후 여성가족부가 시행하는 가정폭력실태 조사에도 참여했다. 옥천=고영권 기자

“여자가 ‘집안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도적이라는 건, 그러니까 여자가 많이 해야 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네’라고 답하면 돼요.”

지난달 27일 오전 충북 옥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펜을 하나씩 잡고 골똘히 생각하는 10여명의 결혼이주여성들 옆에 직원들 네다섯 명이 쉬운 한국어로 설명을 하느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내가 경제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문항을 두고 경제적인 결정이 무슨 의미인지를 한국어가 서툰 이주여성에게 설명하는 데 한국인 직원도 한참을 헤맸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하는 가정폭력피해 실태조사를 맡아 진행 중인 충북폭력피해이주여성상담소의 홍유경 상담사는 “몇몇 외국어로 번역이 된 질문지도 있지만 정확한 조사를 위해서 문항별로 더 쉽게 설명을 해주고 싶은데 생각보다 힘들다”라며 진땀을 뺐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조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날도 옥천에서 영동까지 들렸다가 사무실이 있는 청주로 다시 돌아가는 데 반나절이 넘게 걸렸다. 결혼이주여성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면 평소에도 충북 지역 어디라도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다닌다. 소장을 포함해 5명이 상담소에서 일하는데 전화 상담을 받을 대기 직원 최소 1명을 두고 현장을 찾아다니느라 늘 일손이 부족하다. 먼 거리를 이동하기 힘든 피상담자(이주여성)를 직접 만나러 가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담소장은 물론 일반 상담사들의 개인 전화도 쉼 없이 울린다. 이혼을 준비하는 피상담자에게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를 답해주기도 하고, 상담 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기관(경찰, 병원 등)과 연락하는 일도 잦았다.

[저작권 한국일보]결혼이민자 현황_신동준 기자/2019-12-09(한국일보)
◇ 10년 새 2배로 늘어난 결혼이주여성

지난해부터 가정폭력 방지대책 등의 일환으로 추진된 폭력피해이주여성상담소는 올해 인천, 대구, 청주, 목포 등 4곳에서 문을 열었다. 결혼, 취업, 유학 등 여러 유형의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의 피해 상담을 하는데, 최근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가정폭력 사건으로 여가부가 관련 실태조사를 실시하면서 일이 더 바빠졌다. 지난 7월 베트남에서 온 부인을 발로 걷어차는 남성의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공분을 일으키자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재조명됐고, 이에 따라 실태조사도 진행한 것이다.

국내 결혼이주여성은 그 수가 10년 새 2배로 늘어났을 정도로 빠르게 증가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귀화자를 포함한 결혼이주여성 수는 2007년 약 12만110명에서 2017년 26만4,681명으로 늘었다. 결혼 비자(F-6)로 체류 중인 경우와 혼인 귀화자를 포함한 수다. 전체 이주민 가운데 결혼이민자의 비중은 10~12%인데, 그중 여성이 70~80%에 달한다.

이런 변화 속에 남편의 폭력으로 숨진 이주여성의 안타까운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온다. 앞서 7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2007년 이후 남편의 폭력 등으로 사망한 이주여성이 언론에 보도된 사례만 따져봐도 21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지난달에도 경기 양주시에서 결혼한 지 3개월 된 베트남인 아내가 남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여성 응답자 10명 중 4명(42.1%)이 ‘가정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언어적 학대(81.1%)나 한국식 생활방식 강요(41.3%), 폭력, 생활비 미지급 등이 주된 방식이었다. 외출에 제약을 받거나 신분증을 빼앗기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충북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는 3년 차 상담사 강정은(가명)씨 는 “고부갈등에서 가정불화가 시작되고 가정폭력까지 이어지는 일이 많다”며 “(한국인 부부라면) 70~80년대에나 들어봤을 법한 사례들이다”고 전했다. 현장 상담사들은 결혼이주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성차별적인 시각으로 본다거나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 등으로 취급하는 인식이 갈등의 씨앗이 된다고 봤다.

[저작권 한국일보]출신 국적별 현황_신동준 기자/2019-12-09(한국일보)
◇ 언어소통ㆍ체류지위 등 문제로 인권 사각지대 놓여

한국인 가족 내에서도 가정폭력은 발생하지만,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언어 소통이 어렵다 보니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한국어 소통이 힘든 경우 마을 주민단체 등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되기 쉬워 폭력을 당하고도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고, 상담소 같은 기관과 연결된 후에도 해결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디다.

옥천센터에서 만난 결혼이주여성들은 물론 상담소에 연락해 온 이들도 대부분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했다. 이날 실태조사 전 ‘인권 및 생활법률교육’을 받던 여성들은 체류지위나 아이의 양육 문제 등과 관련해 여러 질문을 쏟아냈지만, 강사의 정확한 이해와 답을 얻기까지는 수 차례 서로 의미가 맞는지 확인하는 문답을 거쳐야 했다. 그나마 해당 교육을 받고 설문조사에 응한 여성들은 가족이 센터 방문을 적극 지원해주는, 주변 상황이 좋은 편에 속한다. 아예 지역 센터나 기관 방문조차 어려운 이들도 많고, 입국 초반에는 한국어 수업을 듣다가 시간이 지나면 육아와 경제활동 등으로 바빠 오래 한국어 공부를 하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현장 전문가들은 전했다.

공경배 옥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초기 적응을 잘해야 가정 안에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데 그러려면 한국어가 제일 중요하다”며 “취직을 할 때도 한국어를 잘해야 더 나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이런 취지로 한국어 방문 교육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를 꺼려하는 가족들마저 있다. 정승희 충북 폭력피해이주여성담소장은 “상담사례 중에는 한국어를 배우면 ‘도망을 간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한국어를 못 배우게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전했다. 인권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17.8%가 한국어 교육을 방해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주여성들이 가정폭력을 당하고도 제 목소리를 못 내는 데는 체류지위가 불안정한 탓도 크다. 청주 상담소 문을 두드린 사례들을 봐도 폭력을 못 이겨 이혼을 하면서 결국 미등록체류자가 되거나 위자료 한 푼 받지 못한 채 본국으로 쫓겨나다시피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배우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체류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조항은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 귀책사유를 입증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6년 한 해 동안에만 결혼이민 체류자격 소지자 중 1,433명이 미등록 체류자가 됐다.

2010년 한국에 온 A씨(당시 20세)는 내년이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 남편은 결혼 이후 한 번도 경제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생활비를 버는 것은 A씨의 몫이었다. 식당, 공장 등을 다니며 일했지만 8~9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더는 버틸 수 없어 이혼을 요구했다. 문제는 이혼 후에 벌어졌다. 가정 유지가 어려웠던 이유가 남편의 불성실함에 있었는데도, 이를 증명하지 않으면 법무부는 더 이상 A씨의 비자를 연장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 남편과 시아버지는 “우리 인연은 이미 끝난 게 아니냐”며 도움을 요청하는 A씨의 연락을 피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가정폭력 경험 유무_신동준 기자/2019-12-09(한국일보)
◇“독립적인 인격으로 이해할 필요”

그나마 상담소까지 직접 찾아온 결혼이주여성은 여러 방식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늘 기대했던 결과를 얻는다고 장담할 순 없다. 체류지위 외에도 경제적 자립, 자녀 양육권과 양육비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하고, 각종 기관과 연계해 복합적인 상담을 진행하는 과정은 피상담자에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상담지원을 받던 도중 연락이 끊기는 경우도 있다. 이혼조차 포기해버린 것이다. 정 소장은 “1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수 차례 본인 상담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인 상담에 의사, 변호사, 경찰, 고용노동청 담당자 등 여러 전문가 자문까지 필요하다 보니 문제 해결 과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정부가 각종 지원 기관을 좀더 촘촘하게 연결해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겠다는 ‘결혼이주여성 인권보호 내실화 방안’을 발표한 것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하지만 단순히 지원 기관을 연결해준다는 데 그치지 말고 피해 여성 개개인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중심으로 놓고 대책의 큰 틀을 바꿔가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일반 가정폭력 사건을 처리할 때 ‘피해자 보호’가 아닌 ‘건강한 가정유지’를 목적으로 보는 우리 법제도의 근간이 이주여성 가정폭력사건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폭력피해이주여성상담소는 다문화가족 관련 지원센터와 달리 피해 여성 개인을 보호하는 데 중점을 맞춘 정책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정승희 소장은 “가족주의 아래에서 결혼이민자를 바라보니 가정이 깨지지 않는 데 주목해 교육을 하고 상담을 하려는 경향이 여전히 있다”며 “독립된 인격체로 이주여성이 살아갈 수 있게 보호하면서 부부가 평등한 관계 속에 원활한 가정생활을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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