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BM 엔진 고도화 작업 유력… “연료 고체화” “인공위성 엔진 시험” 분분
연말까지 양보 없으면 ‘새로운 길’ 포석, 레드라인 위협하며 美 압박 극대화
북한이 8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중대한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과 남측에 ‘영구 폐기’를 약속한 비핵화의 상징 같은 곳에서 장거리 미사일 엔진 성능 ‘고도화’ 작업을 실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기들이 북미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정한 연말을 앞두고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오지 않으면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며 대미 압박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 단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질색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시험 발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국방과학원 대변인은 이날 “7일 오후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됐다”며 “성공적 결과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보고했다”고 밝혔다고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동창리 발사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ㆍ12 싱가포르 북미 1차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두로 폐기를 약속한 곳이다. 그 해 9월 남북 정상이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영구 폐기에 합의한 곳이기도 하다. 풍계리 핵 실험장과 함께 북측의 ‘미래 핵’(핵ㆍ미사일 기술 고도화) 포기 의사를 상징하는 곳에서 시험을 재개한 셈이다.
북한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중대 시험은 ICBM에 탑재되는 미사일 엔진 성능을 향상시키는 시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ICBM 등 신형 무기 개발을 주도하는 국방과학원이 소식을 전하며 “전략적 지위를 또 한 번 변화시키는 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는 게 주요 근거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전략적 지위라는 표현은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던 시기인) 2017년 9~10월부터 사용한 것으로, 핵무기와 관련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시험에서 백두산 엔진을 고체연료 기반으로 ‘업그레이드’하거나, 연료 변화 없이 엔진 효율만 높이는 식의 개량 작업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체연료 미사일은 즉각 기습발사가 가능해 액체연료 미사일보다 전술ㆍ전략적 효용이 크다. 2017년 북한이 시험 발사한 ICBM 화성-14형과 화성-15형에 쓰인 백두산 엔진은 액체연료 기반이라 ICBM 발사 전 연료 주입에 30~40분이 걸린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ICBM을 보유한 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액체연료에서 상당시간을 거쳐 고체연료로 전환해왔다”고 말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액체연료 엔진보다 고체연료 엔진이 순간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력을 내기가 어렵다”며 “동창리 수직 엔진 시험대를 활용해 ICBM용 고체연료 엔진의 첫 시험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동창리의 수직 엔진 시험대는 액체연료용”이라며 이번 시험이 인공위성 탑재용 신형 장거리 로켓 엔진 시험일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현재 북한의 은하 3호(광명성 4호) 로켓이 지구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인공위성은 100~200㎏ 수준이다. 그런데 기존 백두산 엔진 4개를 ‘클러스터링’(결합)하면 추진력이 320tf(톤포스ㆍ320톤의 무게를 밀어 올리는 힘)에 달해 500㎏가량 중대형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고, 정찰 능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용도가 무엇이든 북한의 이번 시험은 대미 압박 성격이 뚜렷하다. 포석은 두 가지다. 우선 미국이 끝내 양보를 하지 않을 상황에 대비해 △중ㆍ러와의 협력 강화 △재래식 군사력 강화 △제재에 맞선 자력갱생 등 ‘새로운 길’을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치적으로 자랑하는 풍계리 핵 실험장 및 동창리 발사장 폐기 약속을 깰 수 있다는 ‘개연성’을 보여주며 연말까지 태도 변화를 촉구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크리스마스까지 답을 내놓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발사체가 ICBM이든 인공위성이든 레드라인을 넘겠다는 것이다. 미사일이냐 위성이냐 차이는 발사체인 로켓 위에 탑재된 것이 탄두냐 위성이냐 밖에 없다.
김형석 대진대 교수(전 통일부 차관)는 “북미 모두 양보할 의향이 없어 보이는 만큼 협상 판이 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국면”이라며 “우리 정부의 ‘중재자’ 역할이 중요한 국면인데 남북 간 채널이 막혀 있는 상황이니 결국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중국을 설득하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김 위원장이 시험을 참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시험 내용도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협상 판을 깨지 않으려 북한이 수위 조절을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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