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지방 소도시 시의원 선거에서 출마도 하지 않은 현직 의원이 가장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입후보자가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주민들이 직접 이름을 기입하는 방식으로 투표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시의원 구인난을 겪고 있는 미국 소도시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진풍경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몬태나주 이스트헬레나의 시의원인 키트 존슨은 지난달 5일 치러진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3명의 주민이 그의 이름을 적어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당선됐다. 인구 2,000명의 이스트헬레나시는 4명의 시의원 중 2명을 새로 뽑기 위한 선거를 치렀는데, 1선거구에는 입후보자가 아무도 없었다. 재선 의원인 존슨도 손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번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어떤 후보 이름도 적혀 있지 않은 빈 투표용지로 치러진 선거 결과 2선거구에 출마한 켈리 해리스가 5표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그는 1선거구 주민이 아니어서 최종적으로는 3표를 얻은 존슨이 당선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유권자들이 투표 용지에 없는 후보를 직접 기입하면 무효표로 처리되지만 미국 상당수의 주(州)에서는 유권자들이 직접 이름을 기입하는 기명투표(Write-in vote)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시의원 수락 여부를 두고 고심하던 존슨은 당초 계획대로 최근 시의원직을 고사했다고 현지 지역언론들이 전했다. 이스트헬레나시는 내년 1월부터 공석이 되는 시의원 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 입후보자를 물색해 설득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 지역 시의원이 한달에 받는 급여는 340달러로 교통비 수준에 불과하다. 시의원은 정기적으로 한 달에 두 번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시 예산을 처리하는 기간에는 매주 출석해야 한다. 제이미 셸 시장은 “지난 10여년간 시의 일부 직책을 채우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몬태나주의 다른 시들도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생업에 바쁜 것은 이해하지만 가슴 아픈 일”이라며 “이(시의원) 자리가 시간을 소모하긴 하지만 적잖은 보람을 찾을 수 있기도 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 미국 지방 중소도시의 시의원 구인난은 이 곳만의 사정이 아니다. 지난달 치러진 캔자스주 페어웨이시의회 선거에서도 한 선거구에 아무도 출마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인 제이슨 로저스가 16명의 기명표를 얻어 당선됐다. 로저스는 이를 고사하지 않고 시의원직을 수락했다. WSJ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는 후보자들이 북새통을 이루지만 유타, 미네소타, 미시건, 캔자스 등의 소도시는 주민들에게 출마를 설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시의원들의 평균 나이는 55~65세 사이인데 구인난이 심각하다 보니 일부 지역은 젊은층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