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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배임] ‘나쁜 의도’ 입증 어려워… 사익 추구 의심만으로 배임 몰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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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배임] ‘나쁜 의도’ 입증 어려워… 사익 추구 의심만으로 배임 몰아가기

입력
2019.12.11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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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 모호함이 검찰권 남용 불러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이한호 기자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이한호 기자

배임(背任)은 사전적으로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법률적 의미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형법 제355조 2항에는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득을 취하거나 조직에 손해를 가하면 배임죄로 처벌 받는다고 규정돼 있다.

상품을 적정 가격보다 싸게 팔거나 거꾸로 원재료를 비싸게 사들여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경우,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를 지원하려고 다른 계열사를 희생시킨 사례, 회사의 영업비밀을 빼돌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임무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 내적 동기가 범죄 성립의 핵심 요소라는 점이다.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내심(內心)’의 영역이라 객관적으로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담당한 공직자와 기업 측은 정당한 경영상 판단이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검찰은 사익 추구를 위한 범행으로 의심하는 장면이 법정에서 자주 연출되는 이유다.

이처럼 모호한 법 조항 탓에 배임죄는 공직자와 기업인에겐 ‘걸면 걸리는 죄’로 인식돼있다. 나쁜 의도가 인정돼 법원에서 유죄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연주(73) 전 KBS 사장은 ‘연임’이라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승소가 확실한 조세소송을 포기하고 법원 조정을 받아들였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섰고, ‘아덴만의 영웅’ 황기철(62) 전 해군참모총장은 ‘승진’을 위해 특정 납품업체를 선정했다는 의심을 받았지만 법원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

배임의 정의와 형량. 그래픽=신동준 기자
배임의 정의와 형량. 그래픽=신동준 기자

 

 ◇정치적 수사로 각인되기도 

배임죄가 논란의 중심이 선 이면에는 정치적 수사로 의심되는 사건에서 자주 활용된 영향도 크다. 이럴 경우 배임죄의 법률적 관점은 퇴색되고 정치적 관점만 부각되면서 전(前) 정권 인사를 벌 주기 위한 ‘요술 방망이’로 각인되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검찰은 8개월간의 수사 끝에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을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무죄 판결이 났다. 부실회사를 인수해 회사에 거액의 손해를 끼친 혐의가 적용됐지만,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취지였다. 비슷한 시기 이명박 정부의 역점사업인 자원개발 비리 의혹을 겨냥한 검찰 수사도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은 마다가스카르 광산개발업체 지분을 고가에 매입한 혐의로,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캐나다 자원개발업체를 시장평가보다 높은 가격에 인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2,3심 법원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경영판단의 영역이어서 배임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서보학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경영판단은 법 논리가 아니라 경제원리가 적용되는 영역이고 판단이 잘못됐다면 기업과 재계에서 통용되는 징계나 문책으로 책임을 물으면 된다”며 “명백한 혐의가 드러났을 때만 수사를 통해 비리를 도려내야지 검찰이 함부로 개입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검찰권 남용 원인으로 꼽혀 

검찰의 단골 수사메뉴였던 대기업의 ‘계열사 지원’이 최근 경영판단 영역으로 인정받아 무조건적인 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은 2017년 계열사간 외상거래를 하게 한 혐의(배임) 등으로 기소된 이낙영 전 SPP그룹 회장 사건에서 “기업총수의 계열사 지원 행위가 ‘합리적인 경영 판단’에서 비롯됐다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전에는 거의 예외 없이 계열사 지원은 법적 처벌대상이 됐다.

수능교재 ‘노스트라다무스’로 유명한 중소기업 A사는 2008년 경영사정이 악화하면서 계열사를 분리해 매각했다. 검찰은 ‘계열사를 적정 가격보다 낮게 양도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A사 임원을 기소했지만,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A사 측을 대리한 우동훈 변호사는 “경영자는 사업가치를 평가할 때 미래를 내다보면서 여러 예측을 하게 되는데, 검찰과 법원은 분쟁이 발생한 뒤 드러난 결과만 평가하므로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검찰 출신 인사들조차 배임죄로 인한 검찰권 남용을 우려하고 있다. 부천지청장 출신의 이완규(58)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기업 규모가 커지면 경영상 판단이 더욱 어려워지는데, 경영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경험이 없는 검사가 법률적 잣대로 재단해서 판단하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능하면 엄격하게 법 해석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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