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1930~1969)의 시 ‘껍데기는 가라’를 활용한 두 10대 소년의 랩은 강렬했다. 지난해 방송된 래퍼 오디션 프로그램 ‘고등래퍼2’에서 단연 화제를 모은 무대 중 하나는 김근수ㆍ조원우가 꾸린 ‘껍데기는 가’ 공연이었다. 두 래퍼는 시를 재해석해 힙합을 향한 순수와 열정을 재치 있게 보여줬다.
“껍데기는 가 알맹이는 남고.” 곡의 하이라이트인 후렴구에 이 문구를 넣어 울림을 준 건 김근수였다. 그는 경연과정에서 다른 래퍼들과 달리 ‘노래하듯 랩하는’ 독특한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최근 만난, 아직 열아홉 살인 김근수에게 음악이란, 자신을 ‘알맹이’로 거듭나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는 “남들한테 맞춘 삶을 살다 음악을 하면서 처음으로 나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획일화된 교육, 또래의 집단 문화가 강요되는 학교에서 자신을 잊고 살다가, 중3 때 랩에 빠지면서 오히려 자신을 들여다보게 됐다고 했다.
‘고등래퍼’ 출연을 계기로 래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지난해 봄 중국 상하이에서 다니던 학교에서 자퇴했다. 학교를 떠난 지 1년여 뒤인 올 초 그는 이런 노래를 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색깔들을 가졌지. 나를 바라보는 세상에 나를 감췄지. 똑같지 않아 난 다른 색깔을 더 더 더 원했지.”(‘카멜레온’) 학교가 아닌 음악에서 제 색을 찾은 김근수는 “음악으로 내가 변한만큼, 내 음악 또한 누군가를 변화시키길 원한다”고 말했다.
올 1월 앨범 ‘김근수’를 낸데 이어 최근엔 신곡 ‘돈’을 발표했다. 곡 구성은 단조롭지만, 멜로디는 중독성이 강하다. 곡 길이는 불과 2분 9초. 1995년 이후 태어난 ‘Z세대’가 온라인에서 짧고 중독성 있는 콘텐츠를 선호하는 흐름에 맞춰 곡 구성을 일부러 헐겁게 했다. 올해 미국을 강타한 ‘릴 나스 엑스 신드롬’에게 자극받아 시도한 실험이었다.
무명 신인 래퍼 릴 나스 엑스는 1분 51초 분량의 노래 ‘올드 타운 로드’로 지난달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인 ‘핫100’에서 19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역대 최고 기록 ‘16주간 1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컨트리풍의 짧은 곡인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수많은 패러디를 쏟아지면서 화제에 화제를 거듭한 덕분이다. 김근수는 “요즘 유행하는 외국곡을 들어보면 곡이 짧다”며 “첫인상을 강렬하게 주기 위해 원래 목소리 톤보다 일부러 좀 높여 랩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근수는 미국 유명 래퍼 카니예 웨스트를 좋아한다. 장르와 형식을 파괴해 힙합 음악의 새 영역을 개척한 웨스트처럼 늘 음악적 실험을 꿈꾼다. “웨스트의 음악은 항상 새롭잖아요. 그게 멋있고요. 사람들이 보는 틀을 깨고 다른 음악과 차별화된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의 눈이 빛났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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