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발사장에서 ‘엔진시험’ 재개를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북한의 거듭된 비핵화 협상 ‘연말 시한’ 압박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북미 간 신경전이 고조되는 와중이어서 북한의 의도와 북미관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아진다.
미국 CNN방송은 5일(현지시간) 상업용 위성업체 플래닛랩스가 같은 날 촬영한 동창리 발사장의 위성사진에서 ‘새로운 활동’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제프리 루이스 미국 미들버리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 프로그램 소장은 “엔진시험대에 전에 없던 화물 컨테이너가 보인다”면서 “위성발사대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동력을 공급하는 데 쓰이는 엔진의 시험을 재개하려는 준비작업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엔진시험이 미사일이나 위성 발사시험과 같은 수준의 도발행위는 아니지만 활동을 재개하는 것 자체가 중대한 변화로 미사일 시험발사의 전 단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목되는 건 동창리 발사장 내 새로운 활동이 포착된 사진의 공개 시점이다. 최근 북미 양국이 경쟁적으로 군사력을 거론한 데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을 각각 ‘로켓맨’과 ‘늙다리’로 부르는 거친 말폭탄까지 주고받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CNN)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북미 양국은 지난해 초부터 대화ㆍ협상모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동창리 기지의 운용과 관련해 적잖은 성과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기지 폐쇄에 동의했다”면서 이를 회담의 최대 성과라고 자평했다. 석달 뒤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를 영구 폐기한다는 내용을 담은 ‘평양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하지만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북한은 꾸준히 동창리 미사일발사장 재건 징후를 드러내왔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를 중지하겠다고만 했지, 핵 생산 활동이나 장거리 미사일 엔진 시험, 위성 발사 등의 중단을 약속한 적은 없다”며 “동창리에서 시험이 이뤄진다면 ICBM용 고체 연료 엔진 시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ICBM으로서의 사거리가 이미 입증된 액체 연료 엔진이 아닌 고체 연료 엔진에 대한 성능 시험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고체 연료 엔진은 장시간 로켓 안에 보관할 수 있어 연료 주입에 시간이 걸리는 액체형과 달리 결심만 있으면 즉각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ICBM용 고체 연료 엔진 시험에 성공할 경우 미국이 받게 될 군사적 부담감은 더욱 가중될 수 밖에 없다.
다만 미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는 북한 동창리 발사장 위성사진에 대한 분석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반도 상공에서의 대북 감시체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해외 군용기 추적 사이트 ‘에어크래프트 스폿’에 따르면 6일에도 오키나와를 출발한 미 공군 정찰기가 동해 방향으로 비행했고, 또 다른 정찰기는 수도권 상공에서 항적이 포착됐다. 미군 정찰기가 대북 경고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한반도 상공 비행 사실을 7일째 노출한 셈이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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