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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안 되면서 동물 키운다? 반려동물이 삶의 버팀목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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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안 되면서 동물 키운다? 반려동물이 삶의 버팀목이라면…

입력
2019.12.07 10: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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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중 한 장면.
영화 '기생충' 중 한 장면.

영화 ‘기생충’을 보며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를 표현하는 방식에 감탄했다. 나는 감독이 대비시킨 두 계급의 어디에 속하는지 거리를 두고 보다가 ‘지하철 냄새’가 등장하는 순간 기택 옆에 서게 됐다. 예측한 다음 장면이 보란 듯이 깨지는 즐거움이 있는 영화였지만 영화관을 나올 때에는 수석이 등에 얹혀있는 느낌이었다. 내 삶은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있을까.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기로는 인간에게 기대어 살고 있는 반려동물이 더하다. 직업병인지 영화를 봐도 언제나 내 눈은 등장하는 동물을 따라가는데 ‘기생충’에는 박 사장네 반려견 쭈니, 베리, 푸푸가 나온다.

박 사장네 가족이 ‘짜파구리’에 한우를 넣어 먹듯 그들의 반려견도 잘 먹고 잘 산다. 가족이 캠핑을 떠나면서 일일이 개들의 먹을거리를 챙기는 모습은 세심하게 보살핌을 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 눈에는 박사장네 개들이 사람을 따라서 부지런히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장면과 기택의 가족이 폭우 속에서 계단을 따라 한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대비됐다. 반려동물의 삶도 가난한 집보다는 부잣집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게 반려동물의 운명이다. 극장을 나서며 집을 팔고 간 박 사장네는 쭈니, 베리, 푸푸를 모두 데리고 갔을까 생각했다.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버리는 주요 이유 중의 하나가 이사다.

 ◇가난하면 반려동물과 살 자격 없나 

먹는 것은 계급을 드러낸다. 같은 한 끼지만 누군가는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우고, 누군가는 유기농 채소와 1++ 등급의 고기로 차려진 근사한 밥상을 받는다.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개 농장의 개들은 습식사료라고 불리는 음식물 찌꺼기로 끼니를 때우고, 유기동물 보호소의 개도 그저 배를 채우는 정도지만 돌봄을 잘 받는 반려동물은 건강에 좋은 사료나 좋은 재료로 반려인이 직접 만든 자연식을 먹는다. 반려동물의 삶에도 계급이 있다. 하지만 인간도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상태라면 경제력이 높아진다고 해서 행복이 그에 비례해 커지지는 않는다. 반려동물도 부잣집 개가 가난한 집의 개보다 무한 행복하지 않다. 반려동물의 행복은 인간과의 우정과 신뢰가 좌우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조차 구조한 아이들을 새로운 가족에게 입양 보낼 때면 마음이 흔들린다. 8차선 도로를 헤매는 개, 동네 골목을 헤매던 개, 탯줄이 채 마르지 않은 새끼고양이 등을 구조해서 돌보다가 입양처를 찾을 때 책임감을 가장 중요하게 봤지만 경제력도 무시하지 못했다. 함께 살 집이 너무 좁거나 안정적인 수입이 없거나 노동 시간이 너무 길면 입양자 후보에서 조용히 배제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여유가 있고, 아플 때 바로 병원에 데려갈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은 있었으면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불편했다. 꼴 같지도 않은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은 반려동물과 살 자격이 없나? 우리가 개,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이 무엇으로도 우리를 판단하지 않기 때문인데 말이다.

지난해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한 노부부가 기르는 개들이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한 노부부가 기르는 개들이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동물 관련한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면서 나는 약자에게 반려동물이 더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인 걸 안다. 경제적 약자. 건강 약자, 어린이와 노령자에게 반려동물은 감정적 지지는 물론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연결하는 끈이 되고, 신체적ㆍ정신적 도움이 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현실에 적용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이런 모순적 사고가 단지 나의 이기심 때문인가.

모든 반려동물은 제대로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고, 그건 전적으로 개인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사회의 책임이 크다. 모두가 동등한 돌봄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배고픔은 면하고, 아프면 치료를 받는 등의 기본적인 뒷받침은 되어야 한다. 적어도 반려동물에 대한 이 정도의 사회적 지지만 있더라도 입양을 보낼 때 의심의 눈초리로 입양 후보자를 걸러내지 않을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취약계층 95% “반려동물 덕에 삶의 만족도 높아져” 

2년 전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서 동물단체 카라가 취약계층 반려동물의 중성화수술과 진료를 담당하는 공공 의료센터를 설립하는 일에 참여했다. 동물복지 선진국에 있는 이런 공공시설은 나의 오랜 관심사였는데 마침내 한국 사회가 취약 계층의 반려동물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이다. 살처분되는 유기동물과 불행한 동물을 줄이는 중요한 시도였지만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결국 엎어졌다. 안타까웠는데 다행히 카라와 서울시가 올해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반려동물 중성화 사업을 펼쳤고 얼마 전 그에 대한 성과보고 심포지엄을 가졌다.

올 4월부터 진행한 이번 사업에서 중성화수술과 의료지원을 받은 개체는 약 1,000마리 정도였다. 대상 개체수가 적고 결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만 사업을 진행하면서 반려동물과 사는 취약계층에 대한 면밀한 설문조사가 이뤄진 것은 큰 성과다. 반려동물과 사는 취약계층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았으니 이후 사업을 이어갈 때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설문 결과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은 이유는 ‘수술비가 너무 비싸다’가 46.2%, ‘중성화수술에 대해서 몰랐다’가 14.5%로 가장 많았다. 중성화수술의 필요성에 대한 교육과 동시에 중성화수술에 대한 의료적 지원이 필요함이 증명되었다. 중성화수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애니멀호더(자신의 능력을 벗어날 만큼 동물을 많이 길러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나 호더 위험군에 속하는 가구가 꽤 됐다. 애니멀호더의 증가는 유기동물 보호소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살처분 비율을 높이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한데 이번 설문으로 저소득층 가구에서 애니멀호더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것도 증명되었다.

지난해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한 노부부가 키우는 개가 줄에 묶여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한 노부부가 키우는 개가 줄에 묶여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반려동물을 통한 삶의 만족도 변화를 질문한 결과 ‘삶의 만족도가 올라갔다’라고 응답한 이가 95.2%로 반려동물과 사는 것이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됨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반면 반려동물을 포기하고 싶었던 경험을 한 응답자가 32.2%로 꽤 높았는데 포기하고 싶었던 이유로는 비용문제 21.7%, 환경이 반려동물에게 좋지 않아서 19.3%, 문제 행동 15.7% 순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원받고 싶은 내용도 의료비 37.8%, 장례비 20.7%, 사료 및 간식 19.6% 순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취약 계층에게 무슨 도움을 주었을 때 어떤 변화를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사실 이런 결과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다. 나는 종종 동물 관련한 강연을 하는데 한 번은 복지관에서 강연 요청이 왔다. 신체적ㆍ정신적 장애가 있거나 저소득층, 고령자가 찾는 곳인데 반려동물과 관련해서 이웃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으니 도움이 되는 강연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연 대상자에 대한 이해가 적은 상태에서 만났는데 강연을 하면서 상황이 짐작됐다. 어떤 반려인보다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도가 높았고, 반려동물로 인한 행복감도 높았다. 하지만 반려동물에게 중성화수술이나 교육을 하지 못한 상태여서 그로 인한 이웃과의 갈등이 심했다. 내가 당장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반려동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얼굴에 행복감이 퍼지는 걸 알 수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취약계층 반려동물 지원 확대해야 

이미 해외에서는 취약계층의 반려동물에 대한 지원을 여러 방면으로 하고 있다. 취약 지역의 반려동물의 중성화수술과 예방접종, 질병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 동물병원을 운영하거나 이동식 의료버스를 운영하는 곳도 있고, 반려동물의 사료와 간식을 지원하기도 하고, 반려인이 입원을 하면 반려동물을 임시 보호해 주는 등의 지원을 한다. 능력도 안 되면서 동물을 키운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끌어내는데 반려동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취약 계층의 반려동물에 대한 지원은 동물복지 개념만이 아니라 인간복지라고도 봐야 한다.

나는 10여년 전 노숙인의 재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코리아’의 창간 준비를 함께 했다. 창간 준비를 하면서 나는 혼자만의 바람을 키웠다. 외국처럼 빅이슈 판매원과 반려견이 함께 잡지를 판매하는 모습을 꿈꿨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 노숙인이 개를 키운다는 부정적인 시선 때문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지인들도 외국에는 노숙인이 개를 키운다면서 개가 불쌍하다고, 이기적이라고 했다. 노숙인과 반려동물은 서로에게 삶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내가 본 사람들은 자기 밥보다 개밥을 먼저 챙겼다. 그들에게도 사연이 있을 테고,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너의 삶이 문제적이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다. 부정적인 시선보다 노숙인의 반려동물에게 의료 서비스, 사료와 간식, 목줄이나 옷 등을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취약 계층이 반려동물과 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춰가야 한다.

영화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영화로 해 볼까. 영화 ‘로지’는 집값이 치솟은 아일랜드에서 아이 넷과 순식간에 거리로 내몰린 로지 부부의 이야기다. 당장 하룻밤 잘 곳이 없어서 자동차 안에서 잠을 청하는 상황. 그 상황에서 아이들은 삼촌 집에 맡긴 반려견 너깃을 데려오자고 부모를 조른다. 일상이 통째로 흔들린 공포 앞에서 아이들에게 너깃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고,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따뜻한 환상일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정책도 취약 계층에게서 너깃을 뺏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이어야 한다.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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