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대법 양형기준 도입 영향… 이득액 50억이상 형량 살인죄 수준 “형벌체계상 불균형” 우려
법원의 배임죄 판결에서 갈수록 집행유예 선고가 감소하고 있다. 혐의가 분명하면 실형이, 모호하면 무죄가 선고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판사의 재량도 줄어들고 있다.
10일 대법원에 따르면 2008년에는 배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의 26.3%만 실형을 선고 받았고, 집행유예는 73.7%에 달했다. 그러나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유죄판결이 선고된 1심 사건 5,315건 중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은 66.0%(3,506건)로 떨어졌다. 이는 2009년 7월 대법원이 일정한 기준에 맞춰 형량을 권고하는 양형기준을 도입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실형 비율만 높아진 게 아니고 무죄비율 역시 높아졌다. 양형기준 도입 전인 2006년 2.7%에 불과했던 형법상 횡령ㆍ배임죄 무죄율은 2012년 5.9%로 2배 이상 높아졌고 이후 5%대를 유지하고 있다. 처벌이 엄해진 만큼 배임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법원이 좀더 엄격하게 심사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배임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깐깐해진 탓인지 배임 혐의로 검찰이 재판에 넘기는 사건 비율도 줄어드는 추세다. 검찰연감에 따르면 2000~2009년 20%대를 웃돌던 배임ㆍ횡령 혐의 기소율(수사기관에 접수된 사건 중 실제 기소한 사건 비율)은 2017년 15.06%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13.77%까지 줄어들었다. 검찰은 배임죄 수사기조에 변화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 “수사실무나 판례 등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형법과 판례의 법리에 충실하게 기소하고 있다. 수사실무에 큰 변화는 없다”고 밝혔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문위원은 검찰의 기소비율이 감소하는데도 법원에서 여전히 무죄비율이 높은 것을 두고 “배임죄를 형사적으로만 처벌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법원의 근본적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는 검찰이 성격이 다른 횡령과 배임을 묶어 재판에 넘기는 관행에 대해서도 “검찰이 횡령죄가 법원에서 무죄로 나올 것에 대비해 배임 혐의를 보충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배임죄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 중에는 형량이 다소 높다는 문제도 있다. 배임죄를 저지르면 1,500만원 이하 벌금이나 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진다. 법원은 배임죄로 얻은 이득액을 기준으로 형량을 세분화하는데, 특히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형법이 아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처벌수위가 훨씬 높아진다. 즉 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지도록 규정돼 있어서 살인죄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간다.
법조계에서도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5년 4월 배임죄가 위헌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에서 합헌 결정이 내려졌을 당시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배임죄 처벌형량이 다른 범죄와 균형이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재판관은 “이득액만을 기준으로 차등적으로 처벌하다 보니 법정형에 현저한 차이가 나게 되어 처벌의 불균형이 심해진다”며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를 침해하는 범죄의 법정형과 비슷해 형벌체계상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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