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이불집·한복집 사이사이 인스타 맛집 ‘평리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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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이불집·한복집 사이사이 인스타 맛집 ‘평리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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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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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인천 평리단길

지난달 26일 오전 인천 부평구 부평동 평리단길에서 시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환직 기자

지난달 29일 오후 1호선 부평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인천 부평구 ‘부평문화의거리’. 상가가 밀집해 있는 거리 한복판에선 청년 사업가들이 직접 만든 상품을 작은 매대에서 판매하는 프리마켓(free market)이 열리고 있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액세서리, 가방 등을 구경 중이었다. 거리 한쪽에선 한 청년이 마이크를 들고 길거리 공연(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저작권 한국일보]인천 평리단길. 그래픽=강준구 기자

인천을 대표하는 번화가 가운데 하나인 부평문화의거리는 낡고 지저분한 재래시장을 관(官)이 아닌 상인들 손으로 변신 시킨 전국 최초의 상가 재생 사례로 알려져 있다. 1996년 당시 건물주와 세입자들은 ‘문화의거리발전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문화의거리 조성사업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낡고 오래된 건물과 노점상, 불법 주ㆍ정차 차량으로 어수선했던 시장 거리는 1998년 차 없는 상가 거리로 다시 태어났다. 2000년대 들어 길거리 공연장이 들어서고 프리마켓도 정기적으로 열리면서 또다시 변신한 문화의거리는 20여년간 경쟁력을 이어가고 있다. 인천에서 수년째 가장 비싼 땅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금강제화 부평점 건물(공시지가 3.3㎡당 4,009만5,000원)도 문화의거리 입구 쪽에 있다.

이달 3일 인천 부평구 부평동 평리단길 한 건물에 평리단길 간판이 걸려 있다. 부평구 제공

◇홈패션커텐 골목이던 평리단길

부평문화의거리에서 바깥쪽으로 골목 하나를 지나면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몸뻬(일바지)를 파는 여성 옷 가게 옆에는 타자기, 전축 등 앤틱 소품과 루프탑(옥상)이 있는 디저트 카페, 스테이크를 100g 단위로 파는 식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카페와 식당 옆에는 계절감을 느끼게 하는 털신을 파는 신발 가게와 붕어빵 노점이 있었다. 부평역에서 경인고속도로 부평나들목(IC)을 연결하는 부평대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1945년 개업한 중국집과 문구사, 올해 문을 연 디저트 카페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골목 하나를 더 지나니 커튼집과 혼수이불집, 한복집, 오래된 식당 사이 사이에 새 간판을 단 가게들이 보였다. 카페부터 파스타집, 재즈펍을 비롯해 산타복 등을 파는 파티용품점, 다양한 브랜드 옷과 신발을 파는 편집숍 등이었다. 입점을 앞두고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 중인 가게도 여럿 보였다. 부평문화의거리와 1950년 개설된 70년 역사의 부평종합시장, 부평깡시장, 1970년 문을 연 진흥종합시장에 둘러싸인 이곳은 과거 홈패션커튼골목이나 중앙로 구역으로 불렸던 ‘평리단길’이다.

이날 평리단길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최은영(36)씨는 “평리단길에 처음 왔는데, 주변 상권이 너무 넓어 찾기가 어려웠다”라며 “재래시장과 현대적인 가게들이 섞여 있는 분위기가 독특하다”라고 말했다.

이달 3일 인천 부평구 부평동 평리단길을 시민들이 거닐고 있다. 부평구 제공

평리단길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경리단길에서 이름을 따왔다. ‘망리단길(서울 마포구 망원동)’과 ‘황리단길(경북 경주시 황남동)’처럼 평리단길도 부평이라는 지역명에서 한 글자를 가져다가 이름을 붙였다.

평리단길은 다른 ‘O리단길’처럼 역사가 매우 짧다. 부평문화의거리상인회에 따르면 평리단길의 시작은 2016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오랜 갈등 끝에 부평대로에 횡단보도가 설치됐는데, 횡단보도가 문화의거리 입구에 있어 문화의거리뿐 아니라 중앙로 구역의 접근성이 크게 좋아졌다. 또 중앙로 구역을 우중충하게 만들었던 낡은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다양한 색의 보도블록을 새로 까는 차도 개선 사업이 이뤄지면서 거리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상인회 관계자는 “현재 평리단길이라고 불리는 중앙로 구역은 지난 30년간 커튼, 한복 등의 매장이 주를 이루는 곳이었으나 2016년 이후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한 카페가 처음 문을 연 이후 매장 구성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달 3일 인천 부평구 부평동 평리단길을 시민들이 거닐고 있다. 부평구 제공

2015년부터 추진한 정부 소상공인진흥공단의 ‘전통시장 지원사업’도 평리단길이 만들어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 상인회 주도로 2015~2017년 골목형시장육성사업을 펼쳤고 이를 통해 프리마켓과 가요제 등을 발굴했다. 2017년부터 올해에는 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을 추진해 평리단길에 야간 조명과 벽면 간판 등을 설치했다. 그 결과 유동 인구가 늘고 새로운 가게들이 늘었다. 평리단길이라는 이름도 더 알려지기 시작했고 하나의 골목이던 평리단길은 중앙로 전 구역으로 확장됐다.

평리단길 한가운데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최정란(58)씨는 “20년간 장사를 했는데, 예전에는 지금처럼 사람이 많지 않았다”라며 “재작년부터 젊은층이 부쩍 늘었고 특히 금요일 오후 4, 5시부터 일요일까지 많이 붐빈다”고 말했다.

이달 3일 인천 부평구 부평동 평리단길을 시민들이 거닐고 있다. 부평구 제공

◇월세ㆍ땅값 2배 이상 올라도 “매물 귀해”

사람이 몰리면서 평리단길 일대 가게 임대료는 물론 땅값은 수년 전에 비해 많이 오른 상태다. 없던 권리금이 생긴 곳도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평리단길에 있는 39.6~42.9㎡ 크기의 작은 가게 월세는 평리단길 조성 초기 60만원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저렴한 곳이 100만원 정도다. 땅값도 3.3㎡당 1,000만~1,200만원에서 2,500만~4,000만원으로 올랐다. 대로변은 6,000만원 수준으로, 8,000만원을 부르는 곳도 있다고 한다.

평리단길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신광식(57)씨는 “문화의거리는 월세가 비싸고 작은 크기의 가게가 별로 없다 보니 1인 창업 등을 하는 청년들이 평리단길 쪽으로 몰렸다”라며 “평리단길이 인터넷에 소개되고 많이 알려지면서 월세와 권리금이 많이 올랐지만 가게를 내놓는 사람보다 구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서 물건이 귀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인천 부평구 부평동 부평문화의거리에서 시민들이 프리마켓을 구경하고 있다. 이환직 기자

상인회와 청년 사업가들이 애쓰고 기존 상인들이 희생해 상가 재생을 이뤄냈지만 임대료와 땅값이 오르고 과장을 보태 자고 나면 하나씩 생기는 신흥 골목 상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상인들 사이에 위기감도 조금씩 감돌고 있다.

파스타집을 운영하는 조영환(30)씨는 “지난해 3월 문을 연 이후 한동안 대전, 대구 등 지방에서도 손님이 오시고 외국인 손님도 많아 평일에도 문을 연 지 30분만에 하루치 예약이 다 찰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라며 “그러나 요즘에는 조금 주춤하다. 정확한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경기가 안 좋고 주차난 등 이용에 불편함이 있어서가 아닌지 추측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오전 인천 부평구 부평동 평리단길 한 파티용품점 앞에 산타복이 전시돼 있다. 이환직 기자

상인회와 관할 기초자치단체인 부평구는 평리단길 활성화 방안을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상인회와 부평구는 주차장 조성을 추진 중이며 차 없는 거리 지정, 인천시티투어버스와 연계한 쿠폰북 발행 등도 검토 중이다. 부평구는 이와 별도로 지난달 패션ㆍ문화콘텐츠를 활용한 부평 상권 활성화 방안 전략수립 연구용역에 착수한 상태다.

오석준 문화의거리상인회장은 “상권이 팽창하는 만큼 집객 효과가 큰데, 평리단길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주변 상권까지 살아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라며 “최근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만성적인 주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구와 함께 주차장 설치를 추진하고 있고 시티투어버스 이용객에게 최대 40~50% 할인 혜택을 주는 쿠폰북 사업을 내년 1월부터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차 없는 거리 지정 경우 차량 이용이 꼭 필요한 상인들이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데 논의를 거쳐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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