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말 시한’ 무리한 압박에, 트럼프 강경기조 전환
北 ICBM 쏘면 한반도 긴장 재연… 비건 “대화 포기 안해”
비핵화 협상의 막다른 길에 봉착한 북미 관계가 연말을 기점으로 2017년 ‘화염과 분노’로 지칭되는 최대 압박의 대립 국면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연말을 데드라인으로 제시하며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압박해온 북한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력 사용 카드까지 거론하며 강경한 대응 기조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의 경고와 막판 대화 제의를 뿌리치고 레드라인을 넘는다면 한반도 정세는 다시 군사적 긴장의 소용돌이 속으로 급속히 빨려들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로켓맨’으로 지칭한 것은 북미간 긴장이 최고조로 달했던 2017년 하반기 이후 약 2년 만이다. 아울러 무력 사용을 원치 않는다는 전제를 달긴 했으나 “그래야 한다면 사용할 것이다”고도 언급했다. 지난해 초 북미 대화 국면이 조성된 후 북한에 대해 줄곧 유화적 메시지를 보내고 대북 외교 성과를 자랑해왔던 트럼프 대통령의 어조가 급속히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북 외교 성과를 지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면 제재 완화 등의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란 북한의 셈법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되레 강경한 기조로 국면 전환을 꾀할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북한이 미국 내 정치 상황과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오판하고 연말을 시한으로 무리하게 압박해왔다”고 말했다. 북한이 실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대북 외교 실패 논란의 부담을 안게 되지만 대선에서 외교 정책이 큰 변수가 아니며 오히려 적대국에 대한 강경 기조가 지지층 결집에 더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 조사로 대북 강경론이 강한 공화당 상원 의원들을 신경 쓸 수밖에 없어 북한에 어떤 양보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연구센터 한국담당국장은 폭스뉴스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같은 이슈에 의해 (상원 탄핵 심리에서) 공화당 표를 하나라도 잃어버리길 원치 않는다”고 강경 대응을 떠미는 정치적 상황임을 지적했다.
따라서 북한이 이를 간과하고 ICBM 발사 등으로 레드라인을 넘으면 북미가 서로 ‘미치광이 전략’으로 치킨 게임을 벌이던 2017년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단 미국은 북한이 지금까지와 달리 본토를 위협하는 도발에 나서더라도 당장의 무력사용 보다 대북 제재 강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2년 전 거론만 됐던 원유 공급 전면 중단, 해상 봉쇄 등의 초강경 제재 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보인다. 현 유엔 제재가 설정한 연간 원유 400만 배럴, 정유제품 50만 배럴의 상한선을 아예 전면 금지로 차단하고 불법 환적 단속을 위해선 공해상 선박 수색권 도입이 시도될 수 있다. 중국이 유엔 제재 결의에 협조하지 않으면 중국 은행과 석유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를 꺼내 들어 중국과의 마찰 수위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주한미군 가족 소개령을 내세워 북한을 극단으로 압박하는 상황이 때에 따라 연출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제재 해제를 노리고 미국을 압박해온 북한이 이처럼 더 큰 대북 제재를 불러올 수 있는 도발을 감행하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때문에 북미간 막판 대화 재개로 돌파구를 마련할 여지는 남아 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는 이날 한국국제교류재단(KF) 워싱턴 사무소 송년행사에 참석해 “현시점에 우리가 희망했던 만큼 많은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면서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뜻을 보였다. 비건 지명자는 아울러 이달 15~16일 방한하는 일정을 우리 정부와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운터파트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과 만나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한 방안을 집중 논의할 전망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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