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환자로 수술을 받았지만, 다음에는 한국 의술을 배우고 싶어요.”
캄보디아 의대생이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무료 디스크 수술을 받고 귀국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대학 의대 4년생인 위레악(21)씨는 지난달 8일 입국해 보름 가까이 대구 바로본병원에 입원 수술을 받은 후 같은 달 21일 복대를 차고 병원문을 나섰다.
윤태경 원장이 병원 문 앞까지 나와 “아프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오라”며 어깨를 두드렸고, 위레악씨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윤 원장의 손을 좀처럼 놓지 못했다. 위레악씨가 조심스럽게 “캄보디아 의대를 졸업한 후 이 병원에서 인턴을 하고 싶다”고 하자, 윤 원장은 “언제든 오면 받아주겠다”고 화답했다.
위레악씨는 2012년 우리나라 모 선교단체가 프놈펜에서 5시간 넘게 떨어진 썬단 오지 마을에 선교 활동을 갔다가 만난 것이 인연이 됐다. 그는 첫눈에도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고 약해 보였다. 마을 어른들은 위레악이 어릴 때 종양 수술을 해서 성장도 늦고 체력도 약하다고 전했다. 선교단체는 유난히 높은 학구열을 보이는 위레악을 외면할 수 없어 정기적으로 후원했고, 그는 프놈펜대학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몸은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 2012년 의대 입학 후 만성통증이 허리를 괴롭혔다. 올 초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견딜 만했지만, 6, 7월이 되면서는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병원에서는 디스크가 터져 수액이 신경을 누르는 추간판탈출증이라고 진단했다. 수술비만 1,000만원이 넘었다.
그가 한국에 SOS를 보냈다. 이 사연을 접한 대구 바로본병원 측이 선뜻 무료수술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윤태경 원장은 젊은 시절 가정 형편 때문에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의대를 다니던 시절이 떠올라 흔쾌히 이를 반겼다.
윤 원장은 “캄보디아 의대생의 사정도 딱하지만 메디시티 대구의 위상을 해외에 떨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의료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위레악씨는 입원 기간 동안 병원에서 가장 부지런한 환자로 통했다. 거동이 가능해진 뒤로는 복대를 찬 채 수첩을 들고 병원을 휘젓고 다녔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의 수첩에는 병원 환경과 구조, 병원과 관련된 내용이 빼곡히 적혔다. 한국과 캄보디아의 의료현실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의료시설과 기술이 낙후된 캄보디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메모했습니다. 허리가 아픈 줄도 몰랐어요. 여기 와서 대구가 ‘메디시티’라는 말을 들었는데, 직접 체험해보니 충분히 납득이 되더군요.”
수술을 집도한 배영관 신경외과 전문의는 “디스크 수술은 간단하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기기 쉽다”며 “한국의 의료 수준은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기 때문에 예비 의사인 위레악씨가 몸으로 체험한 한국의 의료는 캄보디아 의료계에 좋은 사례로 전해질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친절한 의료진에 감명을 받았다”는 위레악씨는 “아픈 몸을 고친 것도 감사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의료서비스’라는 용어를 실감한 것도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영양실조로 인한 위장질환이 흔한 캄보디아에서 내과 전문의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한국이 베푼 은혜를 마음 깊이 새겨서 널리 베푸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대구=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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