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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What] ‘광화문 글판’이 우리를 위로하는 법

입력
2019.12.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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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사회계몽적 메시지…IMF 이후 위로 전해 

2일 오전 새 옷으로 갈아입은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 광화문글판 앞에서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교보생명 광화문글판 '겨울편'은 윤동주의 시 '호주머니'에서 발췌했다. 연합뉴스
2일 오전 새 옷으로 갈아입은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 광화문글판 앞에서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교보생명 광화문글판 '겨울편'은 윤동주의 시 '호주머니'에서 발췌했다. 연합뉴스

서울 광화문 광장을 거닐어 보셨나요? 무엇이 가장 눈에 띄었나요? 근엄한 이순신ㆍ세종대왕 동상을 감상하고 나면 그 옆으로 시선이 닿는 공간이 있습니다. 서울 세종대로 교보생명 빌딩 외벽의 광화문 글판입니다. 바쁘게 오가는 시민들을 사색에 빠지게 하는 마음 속 휴식처 같은 곳이죠.

2일 오전 광화문 광장이 한층 따뜻해졌습니다. 광화문 글판이 새로운 문구로 단장을 했거든요. 이번 겨울편 문구는 일제강점기에 쓰여진 윤동주 시인의 ‘호주머니’란 시에서 발췌했습니다.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호주머니 속 두 주먹 불끈 쥐며 힘내라는 위로가 애달프면서도 정답게 느껴집니다.

광화문 글판은 교보생명 본사 외벽에 걸리는 가로 20m, 세로 8m의 대형 글판이에요. 1991년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설치돼 1년에 4번, 계절감과 시의성을 담은 글귀들이 소개되죠. 29년째가 되면서 광화문 글판은 명실공히 광화문 광장의 명물로 자리잡았어요.

2010년 서울 세종로 교보생명 본관의 '광화문 글판'에 힙합 가수 키비의 노래 '자취일기'중 일부분이 새겨졌다. 교보생명은 “월드컵 거리응원에 모일 젊은이들의 감각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교보생명 제공
2010년 서울 세종로 교보생명 본관의 '광화문 글판'에 힙합 가수 키비의 노래 '자취일기'중 일부분이 새겨졌다. 교보생명은 “월드컵 거리응원에 모일 젊은이들의 감각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교보생명 제공

1991년 1월 처음 걸린 글귀는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였습니다. 이후 ‘훌륭한 결과는/ 훌륭한 시작에서 생긴다’(1994), ‘나라경제 부흥시켜/ 가족행복 이룩하자’(1997) 등 경제성장을 향한 사회계몽적 메시지가 주를 이뤘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전 여름에는 ‘개미처럼 모아라/ 여름은 길지 않다’는 글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주로 직설적이고 중압적인 표현이 많았어요.

IMF를 거치면서 글판은 국민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고은 ‘길’ㆍ2000) ‘먼동 트는 새벽빛/ 고운 물살로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김용택 ‘섬진강 11ㆍ2003) 등 문학 작품에서 따온 서정적 문구가 나왔죠. 2000년 문안선정위원회가 신설되면서 시민의 참여와 투표로 문구를 선정하게 됐습니다.

색다른 시도도 이뤄졌어요. 2010년 힙합 가수의 노래 가사가 글판 문구로 선정됐습니다. ‘너와 난 각자의 화분에서 살아가지만/ 햇빛은 함께 맞는다는 것.’ 가수 키비의 힙합곡 ‘자취일기’의 내용입니다. 인간은 각자 고독하게 살아가지만, 언제든 서로 소통의 공간에 나와 기댈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지금껏 시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글귀는 무엇일까요? 2015년 교보생명이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나태주 시인 ‘풀꽃’의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가 1위에 꼽혔습니다. 총 2,310명 중 1,493표를 받았어요.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월 설 인사로 이 문구를 응용하기도 했죠.

내년이면 글판도 서른 살이 됩니다. 다음엔 어떤 메시지로 우리에게 말을 걸까요. 바쁘시더라도, 퇴근길 잠시 숨을 돌리고 그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글판의 위로는 우리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libo.com

2008년 가을 광화문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에 조향미 시인의 시 '국화차'에서 인용한 글귀가 담겼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8년 가을 광화문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에 조향미 시인의 시 '국화차'에서 인용한 글귀가 담겼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8년 교보빌딩 '광화문 글판'에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의미를 담은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속 문구가 내걸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8년 교보빌딩 '광화문 글판'에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의미를 담은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속 문구가 내걸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교보생명은 2008년 정현종 시인의 문안에서 발췌한 '광화문 글판' 겨울편을 광화문 교보빌딩 전면에 게시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교보생명은 2008년 정현종 시인의 문안에서 발췌한 '광화문 글판' 겨울편을 광화문 교보빌딩 전면에 게시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1년 시민 공모 결과 최우수상을 받은 문안으로, 정호승의 시 '고래를 위하여' 에서 발췌한 문구가 광화문 글판으로 내걸렸다. 교보생명 제공
2011년 시민 공모 결과 최우수상을 받은 문안으로, 정호승의 시 '고래를 위하여' 에서 발췌한 문구가 광화문 글판으로 내걸렸다. 교보생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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