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의 1970년 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한국일보가 그해 제정한 한국미술대상 제1회 대상 작품이다.

이상하게 가슴에 사무치는 구절이 있다. 그게 시구(詩句)거나, 노랫말이거나 영화 대사거나 혹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나 먼저 가신 어머니가 자주 쓰시던 말이거나 누구나 한두 개쯤은 가슴에 안고 산다. 그건 오랫동안 가슴에 용해돼 머리보다 눈자위가 먼저 반응하는 말이다. ‘사무치다’라는 단어조차 사무친다.

내게 오래 사무쳤던 말을 얼마전에 다시 마주쳤다. 늦가을이 막 건너가고 있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다. 거기서 열리고 있는 ‘광장-미술과 사회 1900~2019’ 전시에서 그 그림과 제목으로 삼은 그 문장을 봤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나는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의 이 그림을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선, 한국일보 구 사옥 스카이라운지 복도에서 1982년에 처음 봤다. 짓푸른 작은 네모 점들이 화면 가득 점점이 박힌 그림도 그림이거니와 그림 옆에 붙은 제목이 강렬하게 가슴에 파고들어 평생 잊히지 않았다. 한국일보가 1970년에 제정한 한국미술대상 제1회 대상 작품이었다.

그림 제목이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차용된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1970년 환기의 친구 김광섭은 뉴욕에서 외롭게 그림을 그리던 환기에게 연하장을 보내며 자신의 시가 실린 잡지를 보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나려다 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

환기는 이 시를 읽고 붓을 들었다. 고향 안좌도의 바다, 그리운 고국 친구들을 하나 하나 검푸른 점으로 찍어나갔다. 그리움 하나 점 하나, 슬픔 하나 점 하나, 그리움이 깊을수록 붓도 점도 오래 머물러 번져나갔다. 주례를 서준 화가 고희동, 사회를 본 시인 정지용, 자신이 시집 표지를 그려준 노천명, 그림을 팔아준 최순우, 피란 시절 부산에서 자주 술잔을 나누던 이중섭, 장욱진, 조병화….

환기의 점화(點畫) 시리즈는 이렇게 태어났다. ‘어디서 무엇이…’와 조우한 다음날 그의 다른 점화 ‘우주’가 한국 작가로는 최고가로 경매됐다는 뉴스를 봤다. 환기미술관에 갔다. 마침 환기재단 40주년 특별전 ‘Whanki in New York-김환기 일기를 통해 본 작가의 삶과 예술’이 전시 중이었다(12월 31일까지).

“새벽부터 비가 왔나 보다. 죽을 날도 가까운데 무슨 생각을 해야 하나.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다”(1974. 6. 16, 타계 39일 전)

“내가 그리는 선이 하늘까지 갔을까, 내가 찍은 점이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무지개보다 환해지는 우리 강산”(1971. 1. 27)

환기미술관은 부인 김향안이 1992년 종로구 부암동에 세웠다. 김향안은 시인 이상과 짧은 결혼 생활 끝에 사별한 후 환기와 사랑에 빠져 파리와 뉴욕을 따라다니며 평생을 뒷바라지했다. 아이 셋이 딸린 이혼남 환기와 재혼하며 환기의 성과 아호 ‘향안’을 받아 본명 ‘변동림’을 버렸다.

환기는 뉴욕에서 병이 깊어져 1974년 여름 수술을 받은 다음날 병원 침대에서 떨어졌다. 키가 커서 침상의 보호장치를 떼어놓은 게 화근이었다. 뇌사에 빠진 환기는 12일 후 즐겨 산보하던 뉴욕의 한 동네 묘역에 묻혔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물음은 그렇게 미완이 됐다. 향안은 30년 만인 2004년 남편 곁으로 갔다.

환기는 의료보험료를 아끼기 위해 병이 깊어도 병원을 가지 못했다. 그의 그림 한 점이 132억원에 팔렸다. 글을 쓰는 지금 서울에는 첫눈이 점점이 내리고 있다.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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