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김용균 1주기, 작가 조남주 기고] 살기 위해 매일 일터로 향할 뿐이다

알림

[김용균 1주기, 작가 조남주 기고] 살기 위해 매일 일터로 향할 뿐이다

입력
2019.12.06 04:40
1면
0 0

전태일부터 김용균까지… 여전히 갈 길 먼 ‘안전한 일터’

김용균(왼쪽)과 전태일. 그래픽=신동준 기자
김용균(왼쪽)과 전태일. 그래픽=신동준 기자

작년 가을, 옛 친구에게서 10여 년 만에 연락이 왔다. 자신의 동생이 억울하게 죽었다며 방송에 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건설현장에서 전기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회사가 되레 사고 원인을 동생의 과실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동생이 하청업체 소속이라 일이 더 어렵다고도 했다. 나는 소설을 쓰기 전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지금은 방송일을 하지 않지만 최대한 알아보겠다고 약속했다. 고맙다며 곧 다시 연락하겠다던 친구에게서는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한동안 사건사고 기사를 유심히 보았다. 그때 스물넷 김용균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기사에는 사고 두 달 전, ‘문재인 대통령과 비정규직 100인의 대화’에 참가 신청을 하려고 찍었다는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있었다. 사진 속 김용균씨는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책임자 혼내고! 정규직전환은 직접고용으로!’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안전모와 방진마스크로 얼굴을 거의 가려 까만 뿔테안경 너머의 눈동자만 보였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이의 눈을 마주 보고 있으니 아프고 두렵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일었다.

망설이다가 친구에게 연락했다. 친구는 해결되었다, 고 짧게 답하며 전에 했던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해달라고 했다. 갑자기 연락해 곤란한 부탁을 해 미안하다며. 우리는 뒤늦게 안부 인사를 나눴다. 친구는 그럭저럭 지내는데 어머니가 많이 안 좋으시다고 했다. 어머니에게는 수시로 현관 도어락 열리는 기계음과 ‘갔다 올게요’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단다. 무슨 말을 더 했고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한 일간지 1면을 보는데 그 일이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웹 아카이브에 들어가 사람 모양의 아이콘을 몇 개 누르다가 멈췄다. 반복되는 죽음의 기록들을 더 이상 읽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뭘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여기 한 줄 기록으로 남았든, 남지 못했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침에 출근했고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온갖 순위와 통계들을 본다. 그래서 되려 숫자에 무뎌질 때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거나 매년 2,000여명, 매일 5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다 목숨을 잃는다거나 중대 재해 사망자의 95%가 하청노동자라는 숫자들. 노동자 1명이 사고로 숨질 때 원청에 부과되는 벌금이 평균 400만 원에 불과하다는 숫자도. 새로고침을 하면 새로운 뉴스로 덮여 사라진다.

하지만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생각하면 무력하고 끔찍하다. 아침에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현관을 나선 사람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죽는다. 그래서 영원히 퇴근하지 못하고 가족들은 그가 잠긴 문을 열고 돌아오는 환청에 시달린다. 우리는 전쟁터나 범죄의 현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각오하거나 준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살기 위해 매일 일터로 향할 뿐이다.

죽지 않고 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해야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게을렀거나 무관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했고 기적 같은 성장을 이뤘다. 이윤과 비용의 논리 아래로 노동자들의 삶이 갈려 들어갈 때면 깃발을 들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전태일부터 김용균까지, 많은 것을 바꾸어왔고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뻔하지만 내 곁의 지치고 절망한 어깨를 두드리고 그 어깨에 팔을 두르는 일뿐이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한국도로공사 점거 농성도 90일을 향해 가고 있다. 이들은 2009년까지 대부분 직접고용이었다. 공공기관 구조조정으로 용역회사 소속이 된 후 최저임금을 받으며 폭언과 성희롱에 시달렸다고 한다. 소송 끝에 한국도로공사의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도로공사는 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농성장 벽 걸개그림에는 ‘우리가 옳다’고 크게 적혀 있다.

같은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10년이 넘은 투쟁 끝에 지금은 복직한 KTX 여승무원을 인터뷰했을 때였다. 파업, 해고, 노숙투쟁, 고공농성, 강제연행 같은 단어를 담담하게 주고받았다. 이제 우리는 이런 얘기를 울지 않고 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생각했다. 밤에 혼자 녹음 파일을 듣는데 중간중간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옳으니까요.”

자신의 복직만을 위했다면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을 바꾸고, 안전을 돈으로 계산하지 않고, 여성의 일을 임시와 보조 업무로 제한하지 않으려는 싸움. 모두를 위한 싸움. 톨게이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50대 톨게이트 노동자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 할 날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뒤에 들어올 사람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나만, 내 가족과 자식만 안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안다. 반쪽짜리 산업안전보건법을 보완해야 한다. 중대 재해 예방책을 마련하고 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 오는 7일 서울 종각역 사거리에서는 고 김용균 1주기 추도대회와 촛불행진이 있을 예정이다. 일하다 죽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또 한 걸음이다. 제각각의 섬으로 떠밀리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함께 북적였으면 좋겠다.

조남주ㆍ ‘82년생 김지영’저자

조남주 작가. 뉴스1
조남주 작가. 뉴스1

※‘82년생 김지영’의 소설가 조남주씨가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1주기(10일)를 앞두고 여전히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된 노동현장의 현실을 고발하고 정치권과 기업에 제도 개선과 인식 전환을 촉구하기 위해 한국일보에 특별기고를 보내왔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