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신뢰다. 신뢰는 인간의 행위와 관계, 거래의 근간을 이룬다고 한다. 정치가 엉망이 되고 경제가 추락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발표를 앞두고 성적이 사전 유출된 사건은 국가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실추시킨 대표적 사건 중 하나다. 초중고교의 계단을 힘겹게 밟아온 수험생 입장에서 사실상 대학 입시의 최종 관문인 수능은 이미 출제 오류 등의 문제로 여러 번 신뢰의 위기가 있었지만, 대안이 없어서 유지되고 있다.
□ 공공기관만 그런가. 정치권은 신뢰는커녕 증오와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법안과 정쟁을 연계하는 척박한 정치 문화도 문제지만, 총선 승리를 위한 정치권의 샅바싸움으로 민생은 뒷전이다. 조국 사태, 유재수 감찰 무마, 김기현 하명 수사 사건이 터져 나오는 것은 청와대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다. 정부도 각종 경제 정책이나 외교안보 정책에서 헛발질을 계속하면서 신뢰를 잃고 있다. 청와대와 검찰 등 국가기관끼리도 서로 으르렁거리니 국민이 어느 조직을 믿겠나. 정부나 정치권 모두 불신의 근거지일 뿐이다.
□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려는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결과와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결과는 제도와 이성에 대한 신뢰를 의심케 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레이첼 보츠먼은 저서 ‘신뢰 이동’에서 “역사상 가장 큰 신뢰 이동(trust shift)현상이 나타났다는 증거다. 신뢰 이동은 거대한 단일 조직에서 개별 영역으로 신뢰가 이동하는 현상이다. 이제 신뢰와 영향력은 엘리트 집단과 전문가, 정부 당국보다는 가족과 친구 동료 낯선 사람과 같은 ‘사람들’에게로 향한다”고 했다.
□ 반면 에어비엔비와 우버 같은 앱을 이용할 때 집주인이나 운전자의 신분이 확인되지 않아도 선뜻 예약하는 것을 신뢰 방식의 변화로 본다. 또 사람들이 대중 매체는 불신해도 SNS에서 떠도는 정보는 믿으려 한다. 보츠먼은 신뢰 방식 변화의 원인을 ‘기술 발전’이라고 했다. 앱의 발달과 함께 맛집, 우버 등에 대한 평판은 사이버상에 흔적으로 남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같은 디지털 암호화폐가 블록체인을 활용해 신뢰를 분산 저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블록체인 민주주의’ 도입을 제안하는 학자들도 있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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