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광’ 문 대통령의 독서정치…국정 방향 알리고, 인사 때 참고도
DJㆍ노무현 전 대통령 등도 수시로 책 소개
다독가 문재인 대통령이 또 책에 빠졌습니다. 지난달 29일 금요일 하루 연차 휴가를 내고 주말까지 책 세 권을 내리 읽었답니다. 바로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의 신간 ‘슬픈 쥐의 윤회’, ‘스무 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통일, 청춘을 말하다’였어요. 각각 소설, 불교경전 반야심경 해설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 교수가 한반도 정세를 주제로 나눈 대담을 역은 책입니다. 일부에선 책 저자의 과거 발언 등을 꼬투리 잡아 비판하기도 했지만, 책 제목만 봐도 국정운영에 대한 대통령의 고심이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독서는 단순히 취미나 소일거리에 그치지 않죠. 대중의 관심을 이용해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향후 정국 운영 방향을 알리는 수단으로도 활용됩니다. 현재의 관심사나 가치관이 간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해요. 그래서 대통령의 독서는 ‘고도의 정치행위’라고들 합니다.
남북대화가 재개됐던 지난해 여름휴가 때 문 대통령은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를 읽었습니다. 진천규 통일TV 대표가 한겨레 사진기자 시절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기록한 방북 취재기를 엮은 책이었어요.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통령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지요.
지난 11월 한ㆍ아세안(ASEANㆍ동남아시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 환영만찬에서는 아세안 정상들에게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추천했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입니다. 세계에 한국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역사적 의미를 알리려 한 마음이 느껴지죠.
그런가 하면 지난 8월에는 청와대 전 직원들에게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를 선물했습니다. 1990년대에 태어난 2030세대의 시각을 다룬 책으로, 이들이 어떤 사회현상을 불러오는지, 기성세대는 어떤 눈으로 이들을 바라봐야 하는지를 풀어놓았죠. 문 대통령은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선물 이유를 따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독서는 인사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는데요. 2017년 여름휴가 때 KBS 시사프로그램 ‘명견만리’ 강연을 엮은 ‘명견만리’를 정독한 뒤 강연자 중 한 명이었던 권구훈 골드만삭스 아시아 담당 선임 이코노미스트를 북방경제협력위원장에 직접 추천했죠. 문 대통령이 읽었던 ‘축적의 길’ 저자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경제과학특별보좌관에 발탁됐습니다.
대통령의 독서가 정치적으로만 활용된 것은 아닙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요리는 감이여’라는 책을 소개했는데요. 뒤늦게 글을 익힌 51명의 할머니들이 펴낸 요리책입니다. 문 대통령은 “직접 쓴 레시피를 붙여 소개한 책이어서 재미도 있고, 실용적인 도움도 될 듯하다”고 할머니들을 격려했어요. 지난 5월 윤구병 전 충북대 교수의 도감집 ‘보리 세밀화 큰 도감’을 선물 받고서는 “워낙 방대한 역작이라 ‘잘 팔릴까?’라는 걱정이 든다”며 추천글을 띄우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늘 주목 받는 대통령의 책, 앞선 정권에서는 어땠을까요? 독서 목록을 처음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라고 해요.‘지식자본주의혁명’(피터 드러커), ‘우리 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황훈연) 등이 공개됐죠. 김 전 대통령은 1980년대 감옥 생활을 할 때도 하루 10시간씩 꼬박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책을 반복해서 읽고 메모하는 습관까지 지닌 엄청난 ‘독서광’이었다고 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책을 ‘독서정치’에 적극 활용했어요. 재임 기간 공식석상에서 50여권의 책을 추천했지요.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리처드 파인만),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루이스 거스너) 등 대부분의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았으니 효과는 톡톡히 본 셈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넛지’(리처드 탈러),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등을 읽었답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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