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부상병을 돌보고 도피시킨 1차대전 영국인 간호사 카벨이 1915년 오늘 숨졌다.

크림전쟁(1853~56)의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의 후광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지만, 1차대전의 간호사 에디스 루이자 카벨(Edith Louisa Cavell, 1865~1915)도 성공회 신앙이 가르친 휴머니즘과 사랑의 순교자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다.

잉글랜드 노포크주 노리치(Norwich)의 성공회 목사의 딸로 태어난 카벨은 아버지 간병 경험 후인 30세 무렵 런던병원 수습간호사 교육을 이수해 간호사가 됐고, 1907년 벨기에의 신설 간호학교 교수요원으로 채용됐다. 간호학교는 1914년 1차대전이 발발하고 8월 독일 침공 뒤부터 국제적십자사 병원으로 운영됐고, 간호학교 책임자 겸 현역 간호사인 카벨은 학생들과 함께 독일군뿐 아니라 벨기에군 영국군 등 연합군 부상병들을 보살피는 일에 투입됐다.

그가 부상병 치료만 한 건 아니었다. 그는 기력을 회복한 연합군 부상병들에게 병원 이송증 등을 허위로 꾸며 중립국 네덜란드 등지로 피할 수 있게 주선했다. 그는 프랑스인 독일 첩자의 밀고로 1915년 8월 3일 독일군에게 체포됐다. 조사 과정에 그는 약 200명의 연합군을 빼돌렸다고 자백했지만, 실제로는 1,000명이 넘었다는 기록도 있다. 1915년 10월 군사법원은 그에게 총살형을 선고했다. 형 집행 전날인 그해 12월 3일, 카벨은 성공회 신부에게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애국심만으론 충분치 않다는 걸 압니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해야 하지만, 누구도 미워해서는 안 돼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숨진 뒤 연합국 각국 정부는 그의 죽음을 독일의 야만을 선전하는 도구로 적극 활용하며 신병 모병을 독려했다. 국제 여론의 궁지에 몰린 독일 빌헬름 2세는 카벨이 적십자사 요원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들어 처형의 정당성을 옹호했지만, 한편으론 차후 여성을 처형할 경우 반드시 자신의 승인을 받도록 명령했다.

전후 영국 정부는 카벨의 유해를 운구,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성대한 추모예배를 거행한 뒤 고향 노리치 대성당에 다시 묻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인근의 카벨 추모탑에는 ‘Humanity’란 낱말과 함께, 사랑하는 것만큼 미워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그의 말이 새겨져 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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