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본사인 레킷벤키저(RB)의 신임 최고경영자(CEO) 락스만 나라시만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우선적으로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1일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ㆍ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따르면 나라시만 CEO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영국 RB 본사에서 특조위 조사단과 만나 이같이 말하고 같은 날 홈페이지에 사과 서한을 게시했다.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조사단 5명은 지난달 24일부터 여드레간 인도와 영국 현지를 방문해 RB의 외국인 임직원들을 상대로 대면조사를 했다.
특조위는 “RB의 외국인 임직원 증인들이 지난 8월 ‘2019년도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 청문회’에 모두 출석하지 않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며 “현지 조사는 청문회 후속조치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조사단은 지난달 25일 인도 구르가온시 소재 RB 인디아 사무실을 방문했고, 27일부터는 영국 본사가 있는 슬라우시에서 진상규명 활동을 진행했다. 하지만 인도에 거주하고 있는 거라브 제인 전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 대표이사는 ‘범죄인 인도조약 때문에 현지법에 따라 만날 수 없다’는 이유로 조사를 거부해 만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지명수배 상태인 그는 옥시 마케팅 본부장 시절 가습기살균제 유해성을 알고도 ‘안전하다’는 허위 표시ㆍ광고를 주도한 의혹을 받는다. 제인 전 대표는 옥시에서 2006~2009년 마케팅본부장, 2010~2011년 대표를 역임했다. 2011년에는 서울대 조모 교수 연구팀에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흡입독성 실험을 의뢰하면서 금품을 주고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허위 보고서를 쓰도록 공모한 혐의도 받는다.
제인 전 대표는 가습기살균제가 문제가 되자 슬그머니 한국을 떠났고, 이후 해외 거주를 이유로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의 대면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검찰은 제인 전 대표를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지명수배했고, 인터폴은 2016년부터 최고 등급인 적색수배 대상에 올린 상태다.
인도 정부는 제인 전 대표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거절했다. 제인 전 대표는 현재 모국인 인도에 머물며 RB의 아프리카ㆍ중동ㆍ남아시아를 담당하는 선임 부사장을 맡고 있다.
특조위는 제인 전 대표가 지난 8월 열린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도 불참하자 직접 조사를 추진했고, 최근 제인 전 대표 측이 “인도에서 조사받겠다”고 알려 와 조사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조사단이 출국하기 직전 “범죄인 인도 조약 때문에 현지법에 따라 만남이 어렵다”고 통보해 왔고, 조사단이 인도를 찾았을 때도 만남을 거부했다.
조사단은 28일 RB 글로벌 영국 본사를 방문해 외국인 임직원들을 상대로 대면조사를 하고, 29일에는 나라시만 CEO와 RB 글로벌 안전품질규제준수 총괄 및 법무 총괄 등 주요 임원들을 만났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발생 이후 RB 본사 외국인 임직원에 대한 대면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단은 2008년 옥시RB 마케팅 매니저로 근무했던 외국인 임직원과 2011년 가습기살균제 참사 대응 업무를 담당했던 외국인 임직원으로부터 △가습기살균제 판매 당시 RB그룹 본사와 옥시RB 간 업무 보고체계 △가습기살균제 참사 발생 및 대응과정에서 RB그룹 본사 관여 여부 등에 대한 진술을 들었다.
나라시만 CEO는 피해자와 가족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9윌 1일 부임 후 전례가 없는 비극에 대한 설명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며 “희생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며 “문제 해결은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고 특조위와 함께 지금까지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이 반드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보장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예용 조사단장은 “이번 조사는 아직 규명되지 않은 RB 본사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여 여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인도에 거주하고 있는 RB 인디아 임직원은 참사의 진상규명에 중요한 인물로서 차후에라도 반드시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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