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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다칠지언정 택배는 다치면 안 되는 환경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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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다칠지언정 택배는 다치면 안 되는 환경이었죠”

입력
2019.12.02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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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만화’ 선정 ‘까대기’ 이종철 작가

이종철 작가는 “어릴 때 부모님이 포항제철 공단에서 식당을 운영해 제철소 노동자, 건설 인부, 시장 상인 같은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자랐다. 언젠가 포항과 부모, 당시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이종철 작가는 “어릴 때 부모님이 포항제철 공단에서 식당을 운영해 제철소 노동자, 건설 인부, 시장 상인 같은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자랐다. 언젠가 포항과 부모, 당시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여전히 불안하죠.” 수상소감 치고는 좀 난감했다. 이달 초 ‘2019 오늘의 우리만화’로 선정된 ‘까대기’(보리출판사 발행)의 작가 이종철(34)씨 얘기다. 그는 국내 택배 노동의 현실을 그린 이 작품으로 하일권(‘병의 맛’) 마영신(‘아티스트’) 조현아(‘연의 편지’) 서이레·나몬(‘정년이’) 작가와 함께 이 상을 받았다. 첫 장편으로 지난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한 ‘2018 다양성만화제작지원’에 선정, 1년간의 연재 끝에 올 봄 책으로 출간된 후 독일 라이프치히도서박람회에 출품, 2019 우수만화도서 선정 등으로 주목 받았다.

최근 경기 고양시의 작업실에서 만난 이종씨는 “시상식에 오신 부모님이 환하게 웃으셔서 뿌듯했다”면서도 “요즘 시대에 장편 만화 작업은 들인 품에 비해 인세가 적어, 당장 다음 작품을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첫 장편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작가의 경험을 밑천 삼아 노동 현실을 담았다는 데에 있다. 그가 택배회사에서 일한 기간은 대략 6년.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으로 2012년 상경해 새벽에는 택배회사 아르바이트생으로 저녁에는 만화가 지망생과 만화가로 살았다. 다섯 곳의 택배회사를 거치며 그가 맡은 업무는 수송된 택배를 배달 구역별로 정리, 분류하는 이른바 ‘까대기’. 책 제목에 이 낯선 직업이 붙은 이유다.

대형 컨테이너에 실린 택배 물품은 많게는 1,000개에 달한다. 일꾼 두 명이 하루 5,6대를 ‘까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4시간. ‘몸이 기계처럼 움직여야’ 택배 배달원들이 제 시간에 현장으로 출발할 수 있는데, 컨테이너에 테트리스처럼 꽉 들어앉은 택배 물품을 요령 없이 들어냈다가는 몸에 물품을 맞아 다치는 사고로 이어진다. 만화에서 그려진 출근 첫날 도망가는 아르바이트생은 현실에서도 무수히 볼 수 있다. “저도 (도망갈) 생각은 했죠. 근데 선택지가 없었어요. 서양화를 전공해 관련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정기적인 수입을 기대하기는 어려웠고, 정기수입이 있는 일자리는 아침에 일하고 낮에 그림 그릴 수 있는 여건이 안됐습니다. 퇴근하고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보다는 만화가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함이 컸죠. 일 하고, 작법 배우고, 만화 그렸죠.”

‘일하는 사람을 만화로 그리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은 있었지만 처음부터 택배 회사 얘기를 그리려고 까대기 일을 한 건 아니었다. 단지 일러스트 작업하는 또래 친구들이 시장에서 쓰고 버려지는 걸 보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이름으로 작업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버티다 보니 6년이 흘렀다. 그렇게 버티다 세밀화로 유명한 한 출판사의 그림책 작업을 맡게 됐지만 인세는 5%에 불과했다. 스토리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절반씩 나누는 업계 관행에 따른 계산에서다. 편집자가 조심스레 이씨의 먹고 살 걱정을 했던 찰나 “택배 아르바이트 하고 있어 괜찮다”는 자신의 대답에서 입봉할 장편만화 아이템이 떠올랐다.

택배 노동자로 6년의 경험을 담은 자전만화 '까대기'로 2019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만화작가 이종철 작가. 박형기 인턴기자
택배 노동자로 6년의 경험을 담은 자전만화 '까대기'로 2019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만화작가 이종철 작가. 박형기 인턴기자

“처음에는 웹툰(인터넷만화)으로 구상했어요. 래퍼 지망생 친구를 모델로 택배 노동자가 가수가 된다는 줄거리였죠. 한데 웹툰은 매주 연재하는 거라 연애 같은 곁가지가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저는 노동현장,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은데. 6개월 준비하다 실패했죠.” 작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생각하니 실마리가 보였다. 그동안 맺은 인연 하나 하나가 만화 캐릭터가 됐고, 6년간 꼼꼼하게 써간 일기가 에피소드 밑천이 됐다. “만화에 그린 우아저씨는 원래 을지로 인쇄소 사장님이었는데 회사 부도나고 까대기 일을 하셨어요. 제가 출판사랑 장편 계약했다니까 너무 좋아하시면서 ‘다시는 여기 오지 마라’고 했는데, 작업만 해서는 생계가 안돼서 다른 회사 까대기를 했거든요. 미안해서 아직 연락을 못했어요.”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지는 연재를 위해 주변인들을 ‘취재’하면서 알았다. 화물차 운전자, 상당수 택배 배달노동자가 특수고용직이란 사실을 마감하면서 이해됐다. “만화에서 화물차 운전하는 김기사 아저씨가 택배 배달, 나중에는 까대기까지 하면서도 계속 ‘돈이 없다’고 하잖아요. 김기사 실제 모델이 있는데, 사실 연재하기 전까지 이분이 노름빚이라도 있나 생각했어요. 한달 수입이 5,6백만원인데 계속 돈이 없다고 하니까. 나중에 알았죠. 그 수입에서 지입비, 기름값, 자동차 월부금 같은 거 내면 진짜 돈이 없다는 걸.”

이씨의 차기작은 만화 전태일 평전이다. 내년 50주기를 맞춰 선보일 작품으로 전태일재단이 의뢰했다. 그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20살 때 전태일 평전을 읽고 많은 영향을 받은 경험도 있어서 꼭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택배상자에 ‘파손주의’라고 써있는데, 사람이 다칠지언정 물건은 다치면 안 되는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더군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몸과 마음도 소중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일하는 사람들의 얘기로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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