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근로자파견을 일부 업무에 대해서만 허용하고, 그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 고용 유연화 정책을 도입할 당시 노사정 합의에 기반한 것이다. 근로자 파견은 파견업체와 근로계약을 한 근로자를 제3자인 사용사업체가 일을 시키는 것을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파견법은 파견업체가 근로계약 관계에 개입해 부당 이익을 얻는 것을 막고, 사용사업체가 부당하게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탈법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를 어기면 사용사업체는 그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할 의무를 진다. 대표적인 위반 사례가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 등 파견 금지 업무에서 위장 도급 형식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다. 이를 흔히 ‘불법 파견’이라 부른다. 불법 파견 시 부담하는 직접고용 의무는 법 위반 기업에 사용자 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다. 다만, 해당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할 경우 사용사업체는 이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직접고용 의무는 불법 파견 업체에 근로자 사용 기업과 동일한 책임을 부과함으로써 상품ᆞ용역 시장에서 공정 경쟁이 가능케 하는 법적 교정 장치다.
파견근로에 대해 이 같은 규율이 가능한 것은 노동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라 해도, 그걸 담고 있는 노동자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으로서의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필라델피아 선언에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천명한 것은 이 같은 사실에 기초한다. 이는 부동산이 시장 거래 상품인데도, 실명제와 분양가상한제 등 다양한 제한이 허용되는 것과 유사하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고용노동부가 2017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1만6693명을 직접고용하라고 513개 불법 파견 업체에 명령했는데, 이 가운데 74.8%에 해당하는 1만2480명만 실제 직접고용되었고, 나머지 4213명은 회사가 고용부 명령에 불복해 소송 중이거나 해당 근로자가 직접고용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사는 일부 근로자가 직접고용을 거부한 예를 들어 정부가 직접고용 명령을 남발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근거가 박약하다. 파견법 적용 대상인 근로자가 직접고용 명령을 거부한 것은 파견법이 당연히 예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법적 권리 행사가 예정된 것이 실현됐다는 이유로 그 제도를 비난하는 것은 어색하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오히려 파견근로자 대다수가 직접고용에 동의했다는 점을 평가해야 한다. 즉 일부 학자나 언론의 전제와 달리 파견근로제는 근로자의 자유 의사가 아니라 기업의 일방적 필요에 따라 선택된다는 것이다.
OECD는 2019년 고용백서에서 국가는 고용 관계에서 오분류를 막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즉 노동법상 근로자로 취급되는 자를 그 보호로부터 배제하려는 기업의 행동을 방지하고 비정규직과 디지털 노동자 등에게 보편적 노동권과 사회보장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OECD는 고용의 질이 중요하다는 점과 좋은 일자리를 조성하는 정부의 정책적 책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노동ᆞ사회보장 정책의 입안은 증거에 입각해 이뤄져야 하며 상호 학습을 통해 더 나은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만약 우리 정부가 이러한 OECD의 문제의식과 목표에 동의한다면, OECD 국가들의 오분류 방지 정책과 그 경험을 공유하고 필요한 노동ᆞ사회보장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 및 일부 고용 지표의 약화 등이 부각되고 노동ᆞ사회보장 제도의 개혁에 대한 심리적 저항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산업ᆞ고용구조의 변화에 조응해 노동ᆞ사회보장 제도를 혁신할 의무가 있다. 현실의 어려움은 극복의 대상이지 혁신 노력을 중단할 수 있는 핑계가 아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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