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그룹은 모두가 로봇 같아서 별로야.” 2013년쯤 K팝으로 유럽이 떠들썩할 때였다. 외국인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K팝이 화제가 됐고, 한 영국인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뜨끔했다. 일사불란한 군무에다 판에 박은 듯한 얼굴 표정, 획일적인 음악에 대한 비판이었다. 외국인의 지적은 입시보다 더 치열한 ‘아이돌 양성 문화’를 떠올리게 했다. 가치관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 시절, 폐쇄된 시스템 속에서 스타가 되기 위해 맹훈련을 하다 보면 개성이 말살되기 쉽다는 생각을 했다.
□ 대형 기획사는 많이 바꾸었다고 하나 아이돌 양성 시스템은 여전히 악명 높다. 기획사 연습생들은 10대 중ㆍ후반이 대부분이다. 초등생도 더러 있다. 이들은 휴대폰을 뺏긴 채 종일 ‘연습’에 전념하는 경우가 많다. 또래와의 교류는 차단되고, 이성 교제는 언감생심이다. 바라고 바라던 데뷔를 하게 되고, 스타덤에 올라도 외부 세계와의 단절은 여전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쏟아지는 갈채,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대중 반응 등이 중압감으로 작용하나 정신적 고통을 해소하기 어렵다.
□ 여성 아이돌은 더 힘겹다.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한국 사회의 이중 잣대가 그들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남성 팬들은 여성 아이돌이 성적으로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무대 밖에서는 조신해야 하고, 사회적 발언과 거리를 둬야 한다고 단정한다. 여성주의를 암시하는 사진이나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만 해도 비난에 시달리곤 한다. 사회적 물의를 빚었을 때(특히 성적으로) 여성 아이돌은 남성 아이돌보다 더 가혹한 처분을 받기 일쑤다. 악성댓글(악플)에 더 고통 받고, 연예 활동에 제약을 받을 확률도 높다.
□ 지난 24일 K팝 스타 구하라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또 다른 K팝 스타 설리가 세상을 떠난 지 41일 만이다. 2017년 12월 숨진 종현(그룹 샤이니의 멤버)까지 포함하면 2년이 채 안 돼 한류의 큰 별 세 개가 떨어졌다. 모두 20대다. 절망보다 희망이 넘쳐날 나이다. 세계 대중음악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비극이다. 그들의 죽음을 개인의 불행으로만 한정 지어선 안 된다. 악플도, 선정적인 보도도 사라져야 하지만 K팝 산업 시스템 전반을 되돌아봐야 한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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