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특별법 처리 무산 위기
권 의원 지역구 광주여서 더 논란
“의원님, 부탁 드립니다.” “하지 마세요. 왜 이러세요.”
2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 회의장 앞.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한 시민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이 시민은 빠르게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는 권 의원 등 뒤로 “부탁 드린다”는 말을 반복했죠. 권 의원이 그에게 화를 내는 장면은 현장에 있던 취재진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논란이 불거지자 권 의원은 2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짧은 시간에는 답변을 말씀드릴 시간이 부족했다”고 해명했어요. 다음날 온라인에는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국회의원의 권위의식을 드러냈다. 사퇴해야 한다”(lh****)고 비판했지만, 불쑥 손을 잡은 시민의 무례함을 지적한 목소리도 있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권 의원의 언행이 누리꾼에게 실망감을 안긴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유족과 관련 시민단체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발의된 여순사건 관련 특별법이 장기간 계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원이 간절한 유족의 마음을 다독여주지 못하고 되레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는 지적이에요.
여순사건은 전남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군인 2,000여명이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여수, 순천 일대에서 무장반란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1만 여명이 ‘빨갱이’로 몰려 소중한 목숨을 잃었어요. 수많은 이들이 아무 재판도 없이 산기슭, 초등학교 운동장, 해안 절벽에서 처형 당했습니다. 숨진 사람들 중에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희생 당한 이들도 있었다고 해요.
여순사건을 조사한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당시 군경이 장씨 등 439명의 민간인을 불법 연행해 사살했다”고 결론냈습니다. 장씨 유족 등은 과거사위원회 결과를 바탕으로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어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재심 청구 7년여 만인 지난 3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습니다.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2001년부터 16ㆍ18ㆍ19대 국회까지 세 차례 발의됐으나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어요.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 5건이 제출됐지만, 국회 행정안전위에서 법안 심사를 마치지 못한 채 계류 중이었죠.
논의가 진척을 보이지 않자 유족들은 보상 규정을 빼고 논의하는 방안을 국회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다시 폐기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죠. 그러나 이날 법안소위에 법안이 상정되지 못하면서 20대 국회 내에서도 법안 처리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어요.
폐기와 계류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오랜 기간 유족들의 마음은 타들어갔을 겁니다. 특히 권 의원은 ‘민주화의 성지’ 광주를 지역구로 둔 만큼 국가폭력에 의해 민간인이 희생당한 비극적 사건을 외면했다는 눈총이 더욱 따갑게 쏟아지죠. 시민의 돌발 행동에 대한 권 의원의 대처가 못내 아쉬운 이유입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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