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제로 사회로] <상> 만병의 근원
 자폐증ㆍ난청에까지 영향 미쳐… 지속적 노출 땐 치명적으로 작용 
 “빅데이터 통한 역학 조사 필수… 국내선 정보보호 이유로 쉽잖아” 
지난 3월 한 시민이 마스크를 쓴 채 미세먼지로 뿌옇게 흐려진 광화문 광장을 걷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심희영(가명ㆍ48)씨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증천식을 앓고 있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어김없이 심한 기침을 하며 고통스러워해 학교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 원격 수업을 들을 수 있지만 학교에서 받는 수업과 비교할 수는 없다. 심씨는 “1학기 때는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지는 5월 이후에나 학교에 갈 수 있었고 2학기에도 가을이 되면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져 등교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교실에 공기청정기가 있긴 하지만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이 아니면 틀지 못해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씨는 “아들은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나쁨’ 수준인 50㎍ 정도만 돼도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기침이 심해지는데 학교에서 ‘매우 나쁨(76㎍ 이상)’일 때만 공기청정기를 틀 수 있다는 원칙을 고수해 수업을 못 듣고 나온 적도 있다”고 했다. 음악실이나 과학실, 컴퓨터실 등 특별실에는 공기청정기가 설치돼 있지 않아 수업을 들을 수도 없다. 심씨는 “아이가 미세먼지 때문에 제대로 학습을 못 하는 건 물론, 또래 관계에서도 어려워한다”며 “하루빨리 학교가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한 곳이 돼 아이가 안심하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강준구 기자

심씨처럼 호흡기질환이 있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미세먼지 예보와 실시간 농도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다. 서울에서 네살 딸을 키우는 김하나(34)씨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아이의 기침과 콧물이 심해져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려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휴직을 선택했다. 김씨는 “미세먼지가 극심하던 올 3월에는 거의 한 달 내내 어린이집을 못 보냈다”며 “아이가 미세먼지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공기 좋은 나라로 이민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피해는 주로 심폐기능이 성숙하지 않은 영ㆍ유아나 청소년,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노약자 등에 한정되지 않는다. 성인들도 미세먼지 고농도 기간이면 이상 증상을 호소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직장인 이영훈(43)씨는 별다른 질병이 없지만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최대한 실내에 머무르려 노력한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눈과 목이 따가워지는 증상이 심해지고 두통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씨는 “몇 년 전만 해도 한겨울에 등산이나 캠핑에 나설 만큼 외부 활동을 즐겼지만 이젠 휴일이나 주말에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땐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며 “미세먼지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못 하는 상황이 반복될 땐 우울증까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60년 대기오염으로 인한 국가별 조기 사망률 전망. 그래픽=강준구 기자
월평균 입원환자 및 외래환자 증가율. 그래픽=강준구 기자

이처럼 미세먼지 때문에 불편을 겪거나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늘고 있다. 미세먼지는 흔히 기관지나 폐 등 호흡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미세먼지에 의한 피해는 훨씬 광범위하다는 것이 의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해관 성균관대 의과대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미세먼지로 인한 심ㆍ뇌혈관과 호흡기질환 발생과 사망 증가는 이미 알려져 있는데 최근에는 우울증과 치매 등 다양한 질환의 발생과 악화를 초래하는 위험 요인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글로벌 보건연구소는 지난해 걸어서 통학하는 학생 1,200여명을 대상으로 등굣길 대기오염물질 노출량과 인지능력 간의 상관관계를 12개월간 조사한 결과 학교에 오가며 미세먼지에 오래 노출될수록 또래보다 기억력이 감퇴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호주와 중국 공동연구팀도 중국 상하이에 살고 있는 3~12세 자폐스펙트럼장애(ASDㆍ자폐증) 어린이와 장애가 없는 어린이를 비교 분석한 결과 0~3세 사이에 미세먼지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자폐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발표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대기오염이 불안장애를 야기하고 이것이 비도덕적 혹은 충동적 행동으로 이어져 범죄율을 끌어올린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올 초 서울대 의대와 국립암센터 공동연구팀은 미세먼지 같은 대기오염물질에 노출되면 간 기능도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민경복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미세먼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폐뿐만 아니라 간 등 다른 장기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연구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세먼지가 난청과 치매를 유발하고 루게릭병을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국내와 해외에서 나왔다. 사실상 미세먼지가 만병의 근원이 되는 셈이다.

미세먼지의 치명적 영향이 과소평가되는 건 대체로 미세먼지가 질병의 직접적 원인으로 거론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담배는 폐암 등 각종 질환의 발병과 직접적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미세먼지가 발병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비중은 이에 비해 매우 낮다. 비교적 미세먼지에 단기간 노출이 돼도 곧바로 영향을 받는 폐렴조차 미세먼지에 노출된 뒤 3~4주 후 발생 위험도는 0.1~0.2%가량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세먼지와 폐 질환의 상관 관계를 연구해 온 최창민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흡연을 하면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몇 배 늘어난다고 하지만 미세먼지는 소수점 이하에 그칠 것”이라면서 “하지만 미세먼지는 장기간 체내에 쌓이기 때문에 그에 못지않게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미세먼지에 취약한 어린이나 노약자의 경우 고농도 기간에만 조심할 것이 아니라 비교적 농도가 낮은 때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순간 노출량을 줄이는 것보다 누적 노출량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해관 교수도 “누적 노출량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니 일간 노출량을 줄이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미세먼지의 피해를 지나치게 과장해 공포를 조장한다는 주장도 있다. 장재연 아주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각종 대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의 과도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장 교수가 미세먼지가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냉정하게 문제를 직시하고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와 건강의 상관관계를 명확하게 밝혀내 그에 맞는 대책을 수립하려면 좀 더 면밀한 연구가 지속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해외에 비해 국내에선 이 같은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미세먼지의 특성상 빅데이터를 통한 각종 질병의 역학 연구가 필수적인데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연구자가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최창민 교수는 “미세먼지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하려면 지역ㆍ연령ㆍ성별 등 다양한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지만 빅데이터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다”며 “미세먼지와 다양한 질병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보다 면밀한 역학연구가 이뤄져야 그에 맞는 적절한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