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前 비화가야의 무덤이 처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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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前 비화가야의 무덤이 처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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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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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고분군 63호분 일반 공개… 5세기 최고 지배자 무덤 추정

도굴 없이 온전한 경우는 처음… 철제 농기구ㆍ마구 등 유물 가득

28일 오전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비화가야 지배자로 추정되는 무덤이 공개되고 있다. 창녕=연합뉴스

5세기 무렵 조성된 비화가야 무덤이 28일 1,500년 가량 만에 처음으로 열렸다. 도굴되지 않은 비화가야 무덤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최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5세기 중반에서 후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비화가야 고분군의 63호분을 이날 공개했다. 연구소는 이날 대형 무덤 39호분 발굴조사 성과도 알렸다. 39호분은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89호분, 7호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무덤이다. 규모나 다른 무덤들을 조망하는 위치로 보아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가 묻힌 것으로 판단된다. 사적 제514호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 묘역으로, 목마산과 화왕산 기슭에 무덤을 조성했다. 비화가야는 창녕을 거점으로 삼은 가야 세력이다.

비화가야의 신비를 온전히 간직한 63호분은 커다란 뚜껑돌 7개로 덮여 있었다. 연구소는 이날 대형 크레인을 동원해 뚜껑돌 2개를 들어올렸고, 무덤의 봉인이 1,500년 가량 만에 해제됐다. 무덤 내부에는 땅을 일구거나 논에 물꼬를 낼 때 사용하는 농기구 살포로 추정되는 철제 유물 2점, 마구(馬具)로 보이는 물건, 토기 등이 가득했다. 발굴 유물은 400여점이다.

63호분의 봉토 지름은 21m, 높이는 7m다. 63호분은 봉토 지름이 27.5m, 높이가 8m인 39호분에 가려져 있어 도굴 피해를 피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 관계자는 “공간 넓이를 봤을 때 2명 정도 순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흙을 물체질해서 인골 유무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63호분은 봉토 표면에 점토 덩어리르 바른 흔적이 온전히 남았고, 호석(護石ㆍ무덤 둘레에 쌓는 돌)이 노출돼 있다. 비화가야인의 장송 의례와 고분 축조 기술을 알 수 있는 단서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39호분 축조 기법도 발굴을 통해 온전히 드러났다. 63호분 봉토 위에 중첩해서 축조한 39호분은 빗물 등으로 인한 붕괴를 막기 위해 중심부는 점토를 사용하고, 가장자리는 흙으로 쌓았다. 아울러 봉분을 쌓는 단계마다 점토를 깔아 마감했다. 시신을 두는 매장주체부는 길이가 약 1.5m인 큰 돌을 세우거나 눕히는 형태로 조성했다. 규모는 길이 6.9m, 너비 1.6m, 깊이 1.7m이다. 벽면과 천장에는 일부 주칠을 했다. 인접한 63호분처럼 2.5m 길이 뚜껑돌 8개를 놓고 깬돌로 틈을 메운 뒤 점토를 얇게 덮었다. 조사단은 매장주체부가 두 차례 도굴된 것으로 판단했다. 유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도굴범이 놓고 간 것으로 짐작되는 고무 대야와 양동이가 있었다.

연구소 측은 39호분 매장주체부 건축 양식에 대해 "경북 성주 성산동 고분군 등 대구·경북 지역과 일본 나가노 기타혼조(北本城) 고분 등지에서도 발견된다"며 "비화가야와 주변국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고 강조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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