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내 비판 여론에도 아랑곳없이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 압박을 이어갔다. 이는 특히 2016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지지층 결집을 위한 재선 전략과 연계된 정치적 공약 성격을 띠고 있어 한국으로선 방위비 분담금 협상 파고를 헤쳐나가기가 갈수록 힘들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플로리다 마이애미 인근 선라이즈에서 열린 유세에서 “나는 미국의 대통령이지 전 세계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전임 행정부들이 '부자 나라'들을 방어하는데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고 또 다시 비판을 가했다. 그는 “내가 당선되기 전에 우리의 지도자들은 위대한 미국의 중산층을 그들의 망상적인 글로벌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기 위한 돼지 저금통으로 썼다"며 "그들은 우리의 군을 엄청나게 부유한 나라들을 방어하는 데 썼다. 여러분의 돈으로 복지 국가들에 보조금을 지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그들은 중동 지역에서 전쟁에 수조 원을 썼다"면서 "그런데 여러분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있다. 우리는 승리해 그들(장병들)을 철수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부유한 나라를 방어하는 데 돈을 쓰지 않겠다거나 해외주둔 미군 병력을 줄이겠다는 것은 2016년 대선 공약인 동시에 재선 유세 과정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테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루이지애나주 보시어 시티에서 열린 유세에서 비슷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는 고립주의 및 보호무역 성향을 지닌 미국 노동계층을 겨냥한 것으로 내년 재선 레이스에서 메시지 강도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약 이행의 성과가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교롭게 한국이 첫 상대 격이라는 점도 협상의 험로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최근 워싱턴 외교가에서 한국에 대한 과도한 분담금 증액 압박이 한미동맹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지만 주류 외교가와 등을 지고 당선됐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먹혀들 여지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미국 국방부가 2020 회계연도 기준으로 산정한 주한미군 주둔 비용은 △군 인건비 21억 400만 달러 △운영 유지비 22억 1,810만 달러 △가족 주택비 1억 4,080만 달러 △특정목적용 회전기금 130만 달러 등 44억 6,420만 달러다. 50억 달러에 육박하는 한국에 대해 분담금 요구가 주한미군 비용 전액을 모두 부담하라는 얘기로 ‘부유한 나라 방어에 미국 국민들의 세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거용 메시지도 깔려 있는 셈이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다음달 3~4일 런던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출범 70주년 기념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나토 예산에 대한 미국의 분담금을 대폭 삭감하는 조치도 취했다. CNN방송은 27일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은 나토 예산 중 22%를 부담해왔으나 이를 16%로 낮추기로 했다고 전했다. 25억달러가량의 나토 예산은 본부 시설 유지, 공동방위 투자, 합동 군사작전 등에 사용되며, 미국과 회원국들은 이번 주 예산 분담을 위한 새로운 공식에 합의했다고 미 국방부와 나토 관리들은 전했다. CNN은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이 대서양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기 위한 상징적 차원에서 예산 삭감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이어 내년 일본과 독일 등과의 협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파상 공세가 예상된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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