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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표적] 만들기 쉽다, 추적도 불가능하다… 미국의 골칫거리 ‘고스트건’

입력
2019.11.28 19: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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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 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라리타의 소거스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당시 범인이 사용한 45구경 반자동 권총과 같은 모델을 분해한 모습. 일련번호가 찍히지 않은 리시버와 나머지 부품들을 온라인을 통해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다. AP 연합뉴스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라리타의 소거스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당시 범인이 사용한 45구경 반자동 권총과 같은 모델을 분해한 모습. 일련번호가 찍히지 않은 리시버와 나머지 부품들을 온라인을 통해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또 학교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로스앤젤레스(LA) 북부 샌타클라리타의 소거스 고교에서 16세 소년이 총을 쏴 2명이 죽고 3명이 다쳤다. 으레 그렇듯 미국 10대들의 총기남용 실태를 걱정하는 보도가 줄을 이었고,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거셌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주목 받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범죄에 활용된 무기가 문제였다. 수사 결과, 이른바 ‘고스트건(Ghost gun)’으로 불리는 유령총이 범행에 쓰인 것. 유령이라는 별칭에서 보듯 ‘일련번호(시리얼 넘버)’가 없어 붙여진 이름이다. 소년은 45구경 반자동 권총 부품을 따로 조립해 살인 도구를 완성했다. 총기의 이력 파악이 어려워 범인이 어디서, 어떻게 부품을 얻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핵심 증거 추적에 실패하면서 범행 동기도 밝혀내지 못했고, 수사는 그대로 종료됐다. 다수 매체는 수사 내용을 전하며 “이번에도(again)”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그만큼 고스트건을 악용한 범죄가 미국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뜻이다.

 ◇안성맞춤 범죄 요건 갖춰 

총기폭력 예방 활동을 하는 미 비영리단체 ‘기포드 법센터’는 고스트건의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조립세트나 3D 프린터로 만들어지고, 사법기관이 추적할 수 없으며 금속탐지기에도 감지되지 않는 화기.’ 이 설명에는 고스트건의 제작 및 유통 경로, 법의 맹점 등이 모두 함축돼 있다. 반대로 범죄자 눈에는 ‘익명성(추적 불가), 용이성(온라인 구매), 은밀성(탐지 어려움)’ 등 3박자의 매력을 고루 구비한, 최적의 범행 도구인 셈이다.

고스트건의 악명을 이해하려면 우선 미국에서 생산되는 총의 일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총기 구매는 연방정부가 요구하는 서류 작업으로 시작된다. 이때 각각의 화기에는 고유 일련번호가 부여되며 면허를 보유한 판매자를 거쳐 민간시장으로 진입한다. 아무나 총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사람에게 살상 무기를 건네도 괜찮은 정신상태인지, 범죄 전력은 없는지 등을 판단하는 ‘배경조사’란 걸 통과해야 한다. 총기 주인이 바뀌어도 절차는 같다. 누적된 기록은 추적을 가능케 하고, 범죄 수사의 강력한 도구가 되는 식이다.

고스트건은 이런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한다. 총기사고 관련 통계를 제공하는 민간단체 더트레이스는 “일련번호가 찍히지 않는다. 서류나 면허도 필요 없다. 한 마디로 전통 공급망 밖에서 제조된 무기”라고 규정했다. 추적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왜 익명성이 담보되는지는 제작방식을 보면 명확해진다.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키트건(Kit gunㆍ조립세트 총)’. 여러 총기 부품을 결합해 만드는 유형인데, 미국에서는 완성품을 기준으로 공정률이 80% 이하면 총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인체의 척추처럼 총기에서 가장 중요한 하부 리시버(방아쇠와 해머 연결)를 나머지 부품과 분리해 팔아도 별 탈 없다. 50년 전부터 합법이었다고 한다. 일련번호 등 규제가 전무한 탓에 ‘80% 리시버’란 이름의 수많은 제품이 온라인상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 주류ㆍ담배ㆍ화기류단속국(ATF) LA지부 카를로스 카니노 요원은 더트레이스에 “리시버만 완성하면 사실상 총과 다름없는데도 법 기준에선 금속덩어리에 불과하다”며 “개인이 간단한 조립만으로 치명적인 무기를 제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하나는 최근 각광받는 ‘3D 프린트 총’. 3차원 도면 기술을 적용해 프린터로 총을 뽑아내는, 완벽한 ‘사제총기’다. 3D 총은 2013년 코디 윌슨이란 인물이 세계 최초로 발사 실험에 성공하면서 상용화 길을 열었다. 법원의 제지로 가까스로 설계도면 공개는 막았지만 얼마든지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위험성은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3D 총은 재질이 플라스틱이라 특히 탐지를 피하는 데 유리하다. 금속보다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극복하며 진화 중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6월 법원이 3D 프린터로 권총을 제작한 대학생에게 처음으로 유죄판결을 내린 소식을 전하면서 “용의자가 발포 장치를 구리로 교체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대체품을 검색했다”고 보도했다. 오죽하면 총기규제에 미온적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마저 “3D 프린터로 제작한 플라스틱 총이 일반인에 판매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공개적인 우려를 나타냈을 정도다.

한 남성이 AR-15 계열 반자동 소총을 조립하고 있다. AR-15는 살상력이 뛰어나 미국 총기난사사건의 단골 무기이지만 키트건(조립세트) 형태로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다. 더트레이스 홈페이지 캡처
한 남성이 AR-15 계열 반자동 소총을 조립하고 있다. AR-15는 살상력이 뛰어나 미국 총기난사사건의 단골 무기이지만 키트건(조립세트) 형태로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다. 더트레이스 홈페이지 캡처

 

 ◇허술한 법망 유령총 확산 한몫 

고스트건은 앞으로 더욱 골칫거리가 될 게 확실하다. 관리 부실로 실태 파악부터 어렵다. 2017년 캘리포니아주에서 거둬들인 고스트건은 고작 250정이었다. NBC방송은 의회 소식통의 말을 빌려 “고스트건에 관한 국가 차원의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회수된 총기의 30%를 유령총으로 추정하는 정도”라고 전했다.

고스트건의 주 수요층 역시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2014년 6명을 숨지게 한 샌타바버라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은 편집증 증세가 발목을 잡아 배경조사에서 퇴짜를 맞자 인터넷으로 키트건을 구입해 범행에 나섰다. “다양한 결격 사유로 총기 소유가 금지된 이들에게 고스트건이 유용하다(미 유타대 보고서)”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범죄 조직은 고스트건을 아예 미국 밖으로 퍼뜨리고 있다. ATF가 2009~2014년 멕시코 내 총기 원산지를 따져 봤더니 13%(1만3,600여정)가 어디서 흘러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밀수입’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이 중 상당수를 미국 갱단들이 불법 조립해 암시장에 유통시켰을 것으로 의심한다. 애덤 스캑스 기포드법센터 수석변호사는 “유령총은 멕시코 마약 카르텔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이미 국제적 문제”라고 경고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법적 제재나 제도개선 노력은 더디기만 하다. 미국에서 현재 고스트건 규제 법안을 시행 중인 주는 캘리포니아와 뉴저지 두 곳뿐이다. 뉴저지주는 일련번호가 없는 총기 구매를 불허했고, 캘리포니아주는 자체 조립 총에 고유번호를 달아 당국에 등록하도록 했다. 올 들어 규정을 어기면 형사처벌을 하는 조항도 마련됐다. 결과는 어땠을까. 지금까지 고스트건 소지로 사법처리된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법이 온라인 기반 총기산업을 포괄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결국 연방정부가 나서 일괄 지침을 내놓아야 하는데, 여전히 총기옹호와 규제강화 사이에서 논쟁이 첨예한 터라 정책 방향을 정하는 일부터 쉽지 않다. 존 도나휴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영국 BBC방송에 ”고스트건은 보통 규제를 이야기할 때 물리적 실체를 놓고 판단을 하는 것과 달리 기술 문제를 다뤄야 해 정부에도 ‘미지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D 프린터로 제작된 플라스틱 재질 권총. CNN 캡처
3D 프린터로 제작된 플라스틱 재질 권총. CNN 캡처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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