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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보다, 경제를 읽다] 여유로움 즐기는 뉴요커 묘사... 공공의 경제학, 공원을 품다

입력
2019.11.30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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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프렌더개스트의 센트럴파크 

※ 경제학자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 값이나 화가의 수입을 가장 궁금해할 거라 짐작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생각해보곤 한답니다. 그림 속에서 경제학 이론이나 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죠.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할 때의 흥분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픈 경제학자,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모리스 프렌더개스트, ‘센트럴파크(Central Park)’(1914-15),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52.7×68.6㎝
모리스 프렌더개스트, ‘센트럴파크(Central Park)’(1914-15),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52.7×68.6㎝

미국이나 유럽의 대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부러운 것 중의 하나가 도시 안에 큰 공원이 있다는 점이다. 런던의 하이드파크, 뉴욕의 센트럴파크, 비엔나의 시립공원 등 시민들이 자유롭게 쉴 공간을 도심 안에서 찾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원 안에서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특히 시카고 라비이나 공원의 음악축제, 하이드파크의 프롬스 콘서트, 센트럴파크의 뉴욕필 무료공연, 베를린 발트뷔네(숲속의 무대)의 공연을 위시한 여름철 야외 음악회는 정말 부럽기 짝이 없다. 이런 행사들이 공원이라는 공공재가 시민에게 제공해주는 혜택이다.

 ◇뉴욕 미술관에서 만난 센트럴파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갔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풍경화가 눈에 띄었다. 모리스 프렌더개스트(Maurice Prendergast, 1859-1924)라는 미국 화가의 그림이었다. 그는 캐나다에서 출생하여 보스턴에서 성장한 화가로, 1886년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에서 그림공부를 하였다. 그가 파리로 유학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은 당시 액자 사업을 하던 동생 찰스의 지원 덕분이었다.(반 고흐에게 아우 테오가 있었다면 프렌더개스트에게는 찰스가 있었던 셈이다)

그는 파리의 미술학교에서 수학하면서 실내에서 석고 데상을 하기보다는 밖으로 나가 스케치에 몰두하였다. 인상주의 미술가들과 교류하면서 1895년까지 파리에서 활동한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감을 구사하였다.

이후에도 그는 유럽을 자주 여행하며 후기 인상파와 유사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들보다는 더 자유로운 필치로 색채를 폭넓게 사용하여 전반적으로 세련되고 서정적인 색감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 유럽을 여행한 기간에 그린 1899년 작 ‘빗속의 우산들(Umbrellas in the Rain)’과 같은 그림은 그가 후기 인상주의의 경향, 특히 폴 세잔의 그림과 점묘파 기법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프렌더개스트의 후기 그림들은 부유하는 기하학적 모양으로 모자, 우산, 나무, 풍선, 마차바퀴 등을 묘사한 것들이 많다. 1904년 이전의 작품은 거의 수채화였지만, 이후로는 점차 수채화 스케치를 기초로 해서 유화를 많이 그렸다. 이때의 작품들은 여전히 모자이크와 비슷한 느낌을 주되 더욱 추상적인 경향을 띤다.

 ◇도심 속 대공원이 선사하는 선물 

프렌더개스트가 1900년대 작품 중에는 센트럴파크를 그린 것이 여러 점 있다. 그가 그린 센트럴파크는 화면 가득히 공원의 무성한 나무들과 벤치 그리고 오가는 사람과 마차 등이 빼곡히 그려져 있어서 당시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풍성한 색채감이 그대로 녹아있는 그림 속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생동감이 느껴지는데 1915년에 완성한 ‘센트럴파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프롬나드, 글루체스터(Promenade, Gloucester)’ 같은 그의 걸출한 작품 역시 뉴욕시에 있는 휘트니(Whitney) 미술관에 걸려 있다.

뉴욕 맨해튼의 한가운데에 있는 넓은 직사각형의 공원인 센트럴파크가 뉴욕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맨해튼은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이스트사이드와 웨스트사이드로 나뉜다. 이스트사이드는 노년층이 많이 사는 부촌인 반면에 웨스트사이드는 젊은 사람들이 많고 길거리엔 핫도그가게들이 금세 눈에 띈다.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 음악을 작곡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Westside Story)’도 서쪽 지역 빈민가 젊은이들의 사랑과 방황 그리고 비극적 종말을 그린 작품이다. 센트럴파크에서는 여름이면 ‘Priceless music is absolutely Free!’(가격을 매길 수 없는 음악이 진짜 공짜!) 라는 표어를 붙인 여름 음악제가 열린다. 또한 이 공원은 ‘사이먼과 가펑클’의 재결합 무대가 열렸던 곳이자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공연도 볼 수 있는 곳. 또한 셰익스피어의 연극 무대를 공짜로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센트럴파크는 뉴욕을 무대로 하는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70년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린 ‘러브스토리(Love Story)’가 대표적이다. 영화 속 센트럴파크에서 스케이트 타는 장면, 그리고 백혈병으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쓸쓸히 눈 덮인 센트럴파크를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잊을 수 없다.

센트럴파크 이스트사이드인 5번가 북쪽은 여러 뮤지엄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우선 90가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건축미가 빛나는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이, 맞은편 80가 쪽에는 거대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있다. 그 밑으로 내려오다 왼편으로 접어들면 80년대에 백남준의 회고전을 열었던 휘트니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있다. 매년 6월 이 거리에서는 ‘뮤지엄 거리 축제’(Museum Miles Festival)가 열린다. 여러 미술행사 중에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행사는 어린이들이 거리 바닥에 마음대로 낙서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벤트다. 이 행사가 끝나면 5번가 대로와 센트럴파크 벽이 온통 아이들이 그려놓은 재미있는 그림과 낙서로 채워져 있는 것을 보는 일은 즐거운 경험이다.

 ◇경쟁도 배제도 없는 공공재 혜택 

센트럴파크 같은 공원은 경제학적으로는 어떻게 분석될 수 있는가? 공원은 경제학에서는 가로등이나 등대 같은 공공재(public goods)로 분류된다. 공공재는 보통의 재화인 사유재(private goods)와 구별되는 재화로 교육이나 국방 같은 공공서비스도 포함된다.

공공재는 그 속성상 사유재와 다른 두 가지 특성을 지닌다. 첫째, 공공재는 소비에 있어서 비경합성(non-rivalry)을 갖는다. 이는 사유재가 지닌 경합성과 반대로 이해하면 된다. 쉽게 말해서 빵 같은 재화는 소비자가 시장에서 얻기 위해서 반드시 가격을 지불해야 하고 그렇게 소비된 빵은 다른 사람이 살 수 없다. 이는 시장에서 사유재를 소비하려면 다른 소비자들과 경쟁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둘째, 공공재는 이용자들이 편익(benefits)을 얻는 데 있어 비배제성(non-excludability)이 적용된다. 공원이 주는 편익을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 공원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공원에서 얻는 편익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또한 공원을 조성하는데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이들의 이용을 제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공공재는 사유재와 확연히 구별된다.

그렇게 때문에 시장의 민간 부문은 공공재를 생산해 공급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왜냐하면 공공재의 속성인 비배제성 때문에 누군가가 비용을 들여 생산한다면 누구든지 거기에 편승하여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소비자들을 무임승차자(free riders)라고 부른다. 이러한 무임승차 문제 때문에 공공재에 대한 투자는 민간 시장을 통해서 쉽게 공급되기 어려우며,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공공재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공공재 생산에서는 시장 기능이 실패(market failure)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재는 정부가 맡아서 공급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국가에서 주도하게 되는 경우에 정부 관료조직이 과도한 예산 지출을 통하여 공공재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보다 많이 생산하려는 유인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관료조직이 예산을 팽창시키려 하는 경향은 경제적 효율 면에서 정부의 실패(government failure)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하여튼 200여 년 전에 센트럴파크를 조성하여 공공재의 순기능을 뉴요커들에게 제공한 뉴욕시 관료들의 장기적 안목은 놀랄 만하다. 프렌더개스트가 그린 센트럴파크에는 자동차 대신에 마차들이 공원을 누비고 있다. 특히 성장(盛裝)한 옷매무새로 한가로이 벤치에 앉아있는 부인네들과 우아한 모자를 쓰고 말을 탄 여인들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19세기 말 유럽의 어느 대도시 상류층 사람들 못지않게 당시 유행하던 복장을 잘 차려입고 센트럴파크를 산책하는 그의 그림 속 사람들 모습에서 100여 년 전 뉴요커들의 여유로운 일상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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