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헌법 1조’ 표현의 자유 보장
집회ㆍ시위의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를 향한 불만이나 비판, 호소의 목소리가 해당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건 전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다. 미국도 그렇다. 백악관이 위치한 수도 워싱턴DC에선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매년 1,000~1,500건의 시위가 벌어진다는 비공식 집계가 있을 정도다.
특히 백악관 앞은 단골 시위 장소다. 총기 규제 강화 요구, 기후변화 대책 촉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정책에 대한 항의 등을 외치는 백악관 앞 시위 풍경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의 제재가 가해지는 경우는 극소수다.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을 규정한 ‘수정헌법 1조’가 그만큼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어서다. 한국과 달리 ‘100m 이내 시위 불허’ 같은 제한 규정도 없다. 1인 시위 역시 신고할 필요가 없다.
공권력이 시위대 단속에 나서는 건 경찰 폭행, 폴리스라인 침범 등 예외적인 경우에 국한된다. 하지만 폴리스라인이 설치되는 집회는 전체의 5%가량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법적ㆍ평화적 집회를 하는 시위 문화, 이에 대한 공권력의 신뢰가 사회 저변에 뿌리내린 탓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유독 시위가 늘어난 탓인지, 지난해 8월 미 정부는 시위 규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미 내무부 산하 국립공원관리청(NPS)이 “워싱턴의 문화ㆍ역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주요 지역의 시위 규정 변경 계획을 공고한 것이다. △백악관 북쪽 인도의 80% 구역에서 시위 금지 △내셔널 몰(백악관, 링컨기념관, 국회의사당 사이에 있는 국립공원) 지역의 사전허가 없는 즉흥적 시위 제한 △단체의 행사ㆍ집회 시 공공시설 사용 비용 청구 가능 등이 주된 골자였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거센 반대에 직면했다. 민권단체들은 “시위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NPS는 지난달 28일 이를 무효화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NPS는 “14만건 이상의 의견을 받은 결과, 시위 규정 변경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고문인 케이트 루안은 “내셔널몰은 우리가 ‘국민’으로서 정부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곳”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앞의) 시위대를 좋아하지 않겠지만, 수정헌법 1조는 우리가 그곳에 있을 권리를 보장한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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