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영화 ‘겨울왕국2’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한국에서만 26일까지 500만명이 극장을 찾아 엘사ㆍ안나 자매의 새로운 모험에 동행했다. 엘사처럼 얼음 마법을 지니진 못했지만 용기와 지혜로 관객을 사로잡은 안나 캐릭터는 바로 한국인 손에서 탄생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소속 이현민(38) 슈퍼바이저다. 26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만난 이 슈퍼바이저는 “누가 뭐라 해도 나에게 ‘최애 캐릭터’는 안나”라고 웃음 지으며 “엘사와 안나의 우애가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겨울왕국2’에서 엘사와 안나는 마법의 근원을 찾아 낯선 세계로 떠난다. 이 슈퍼바이저는 안나의 애니메이션을 전담해 안나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책임졌다. “전편에서 안나는 외롭게 자랐지만 밝고 씩씩해요. (언니) 엘사가 왕국을 뛰쳐나갔을 때에도 과감하게 뒤쫓아 가죠. 이번엔 두 캐릭터의 역할이 바뀌었어요. 엘사는 모험을 향해 직진하지만, 안나는 엘사를 걱정하죠. 안나는 엘사를 지키려 분투하면서 성장해요. 자기자신을 믿고, 넘어져도 딛고 일어나면서, 내면의 힘을 깨닫게 되죠. 그렇게 여왕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안나는 외모부터 달라졌다. 귀엽고 발랄했던 양갈래 머리 스타일에서 벗어나 올림머리나 반묶음 등으로 다양한 변화를 줬고, 의상은 채도를 낮춰 성숙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 슈퍼바이저는 “‘겨울왕국2’가 궁극적으로 개인의 뿌리와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라 더 의미 있는 속편이 된 것 같다”고 평했다. 전편에 애니메이터로 참여해 엘사가 마법과 함께 ‘렛잇고’를 부르는 장면 등을 작업한 그는 2017년 12월 ‘겨울왕국2’ 슈퍼바이저 자리를 제안받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선 애니메이터의 실력과 개성에 따라 유연하게 자리를 오간다. 승진이 아니라 각 프로젝트 성격에 맞는 적임자에게 책임을 맡기는 역할 분담 개념이다. 그는 “수평적인 구조가 디즈니가 지닌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했다.
이 슈퍼바이저는 어린 시절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만화가를 꿈꿨다. 2007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입사해 그 꿈을 이뤘다. 한국에서 대학교 1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 미국으로 떠나 웨슬리언대학과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그 뒤엔 딸의 꿈을 지지한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가 대학 입학을 앞둔 무렵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반 년 뒤 미국으로 건너와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게 됐어요. 혼자서 이겨내야 하는 숱한 고비를 겪었죠. 그래서 안나에게 더 공감했던 것 같아요. 안나가 절망 속에서도 일어서서 벽을 올라타는 장면은 저에게 특히 남다른 의미로 다가와요. 많은 관객들이 안나를 보면서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동양인이자 여성으로 이 슈퍼바이저가 디즈니에서 일군 성취는 디즈니의 진보와도 포개진다. 그는 “디즈니의 전통을 이어받는 동시에 미래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인간 관계, 사랑과 우정, 가족, 미래에 대한 희망 등 변하지 않는 덕목들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은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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