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집도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로가르주(州)의 하미드 카르자이 고등학교에 다니던 남학생 A(17)군은 어느 날 교장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집에서 쫓겨났다. “발설하면 죽여 버린다”는 교장의 위협을 무릅쓰고 범죄 사실을 고발했으나 되돌아온 건 사회의 낙인과 가족의 냉대였다. 소년은 “아버지가 자기 눈에 띄면 절 죽일 거라고 했어요”라고 미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국제사회의 오랜 지적과 규탄에도 불구하고 아동 성 착취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아프간에서는 학교마저 위험지대였다. NYT는 로가르주 3개 학교 안팎에서 교직원 등에 의해 165명의 남학생이 강간 피해를 본 사실이 보고됐다고 지역 인권옹호단체인 ‘로가르 유스ㆍ소셜ㆍ시빌 인스티튜션(이하 로가르 유스)’을 인용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로가르 유스는 지난 5월 페이스북에서 미성년자 성 착취 영상이 유포되자, 직접 피해자들을 찾아가며 진상조사를 벌여왔다. 가해자는 교장과 교사, 학교 선배 등 광범위했다. 또 다른 피해자 B(14)군은 담당 교사가 기말시험에서 낙제점을 주지 않는 대신 ‘작은 보답’이라며 성 상납을 강요했다고 진술했다. 심지어 학내 피해와 관련한 조사를 위해 경찰을 찾은 학생이 경찰관에게 다시 성범죄 피해를 본 경우도 있었다.
아프간에는 ‘바차 바지(Bacha Bazi)’라고 불리는 소년 성 착취 악습이 수 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권력을 가진 성인 남성들이 소년들에게 여성 옷을 입혀 춤을 추게 하거나, 성노예로 활용하는 것이다. 경매를 열고 입찰자에게 소년을 강제로 성매매 시키는 등 명백한 아동 성범죄이지만 오래된 ‘관습’이라는 이유로 묵인되면서 제대로 된 실태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있는 법마저 유명무실하다. 아프간 정부는 지난 2017년 5월에야 바차 바지와 관련된 범죄를 형사처벌 하기로 했다. 최대 3년 징역형, 교사 등 상급자가 연루될 경우에는 징역 5년형도 가능하다. 그러나 애초에 피해 사실을 쉬쉬하는 데다, 가해자에 대한 기소도 드문 게 현실이다. 유엔은 지난해 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 78건을 담은 보고서를 내면서 “가해자에 대한 면죄부는 여전히 심각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러니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다. 로가르 유스의 모하메드 무사 대표는 NYT에 피해를 폭로한 소년 중 7명이 숨진 채 발견됐으며, 일부는 가족에 의해 ‘명예살인’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앞선 A군 사례처럼 피해자가 집에서 쫓겨나거나 가족이 단체로 살던 지역을 떠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AP통신은 무사 대표와 활동가 에사눌라 하미디가 지난주 아프간 국가안보국(NDS)에 의해 체포돼 구금된 상태라고 이날 전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성명을 통해 “아프간 정부는 활동가 무사와 하미디를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달 초 영국 가디언을 통해서도 “로가르주 6개 학교의 남학생 546명이 학교 관계자 등에 의한 성 학대를 당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후 이들은 ‘로가르주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살해 협박과 정보 당국의 감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로가르주 지역 경찰과 교육 당국 등은 “(교내 성범죄 사건이) 한두 건은 발생했을 수 있지만, 광범위한 성 착취는 없었다”면서 이 같은 고발을 부인하고 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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