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층 진보는 상위층 보수처럼
자신들의 기득권 내놓기 어려워
교육이 불평등 대물림 최대 원인
강남좌파가 위선을 저지른 건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의 위선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마치 몇몇 개인들의 위선이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구조적으로 학력 자본을 축적하고 세습하는 기득권 문제는 가려진다. 부동산과 학력 자본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차이가 문제인 한, 상위층 진보는 상위층 보수와 마찬가지로 불평등을 해결하기 힘들다. ©게티이미지뱅크

강준만 교수의 ‘강남좌파2’가 나왔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진보의 문제도 ‘강남좌파’의 관점에서 다시 풀어 나갔다. 기존의 좌파나 진보는 자본과 노동의 이분법에서 출발하면서 사회 갈등의 문제를 1대 99의 틀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1%의 자본가가 자본주의 사회의 나쁜 문제의 원인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사회에서 실제로 중요한 자산과 부의 경계선은 20대 80이다. 고위 공직자, 대부분의 전문직과 대기업 정규직이 20% 상위층에 속한다. 당연히 강남좌파를 비롯해 전문직 진보들의 다수도 거기에 속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마치 1%의 자본가에게 모든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상위 기득권 계층이 된 자신들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자신들은 계속 착한 진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국이 강남좌파를 옹호한 것도 이런 이유다. “강남에 사니까 보수적이려니 하는 것은 기계론적 접근이다. 나는 오히려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강남좌파, 영남좌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남에 살거나 부자라도 좌파나 진보일 수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좋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득권 계급이 되어 버린 진보-좌파는 더 이상 좌파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 자산 불평등과 교육을 통한 불평등의 생산에서 그들은 보수 못지않은 기득권 계급이다.

강 교수는 강남좌파가 자신들의 기득권 문제를 성찰하기를 바란다.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먼저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1%에게도 개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든 좌파든 상위 계층이 정말로 자신들이 가진 몫을 양보하거나 내려놓을 수 있을까? 강 교수도 상위 “20%는 자신의 몫을 줄일 뜻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를 피력하고 있다. 견고한 사실의 벽이 있는데, 그들이 그 몫을 내놓아야 한다는 희망적 사고가 그 벽을 두드린다.

그런데 상위 20%에 초점을 맞추면, 진보는 불평등 문제를 줄일 수 있을까? 사실 판단에선 나도 강 교수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진보의 희망에서는 회의적이다. 우선, 상위 20%가 기득권 계층이지만, 그들이 동일한 집단은 아니라는 것도 문제다. 집 한 채와 노후 준비용 자금 조금 가진 사람도 거기에 속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상위 1~5%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하위층과 비교하면 그들이 기득권 계층이나 강남좌파인 것은 맞다. 그렇지만, 그들은 1~5%와 달리 내놓을 몫이 거의 없다고 여길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소득뿐 아니라 자산의 불평등을 생산하는 가장 큰 요인이 교육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단 상위 계층이 된 사람들 대부분은, 보수든 진보든, 교육을 통해 학력 및 학벌 자본을 축적하려는 경향이 크다. 입시에서 학생부종합을 줄이고 정시를 늘린다 한들, 수능도 상위 계층에 크게 유리하다. 특목고와 자사고를 없애면, 심지어 강남 학군에 유리하다. 교육은 불평등의 세습을 조장하는 가장 큰 구조적 원인이 되었다.

강남좌파가 위선을 저지른 건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의 위선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마치 몇몇 개인들의 위선이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구조적으로 학력 자본을 축적하고 세습하는 기득권 문제는 가려진다. 부동산과 학력 자본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차이가 문제인 한, 상위층 진보는 상위층 보수와 마찬가지로 불평등을 해결하기 힘들다. 그들 다수가 직접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보면, 그렇다. 진보가 이 환멸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말 변화가 일어나려면, 하위 계층이 직접 정치에 나서야 한다. 기득권 계층이 된 정치인을 바꿔야 한다.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정의당조차 서민의 삶에서 거리가 멀다. 그러나 하위층이 직접 정치적 주체로 나서는 일 또한 아주 어려운 일이다. 또 다른 희망사항일 수 있다. 민주주의조차 그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 냉정하게 보면, 씁쓸한 환멸을 자꾸 만나게 된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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