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영애(48)를 스크린에서 다시 마주하기까지 14년 걸렸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 이후 잠시 숨을 골랐던 이영애는 결혼을 하고 쌍둥이 아들ㆍ딸을 키우면서 카메라 앞을 떠났다.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에겐 가족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이 연기만큼 소중했다. 그 시간은 연기에도 깊이와 윤기를 더했다. 새 영화 ‘나를 찾아줘’(27일 개봉)에서 이영애는 한층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연기로 필모그래피의 공백을 단숨에 지운다.
“14년을 기다린 보람이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시나리오를 쉬지 않고 후루룩 읽었어요. 캐릭터에 밀도가 있고 주제와 구성이 뛰어나서 좋은 희곡 작품을 본 것 같은 느낌도 들었죠.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25일 서울 소공동 한 호텔에서 만난 이영애는 “환경과 여건이 뒷받침 될 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며 “여러 가지 면에서 운명처럼 느껴진다”고 생긋 웃음 지었다.
‘나를 찾아줘’는 6년 전 실종된 어린 아들을 찾아 다니는 정연(이영애)에게 제보 전화가 걸려 오면서 시작된다. 생김새부터 흉터까지 똑같이 닮은 아이가 어느 외진 바닷가 낚시터에서 일하고 있다는 얘기에 정연은 홀로 그곳으로 향한다. 그러나 낚시터 사장 일가족과 지역 경찰 홍 경장(유재명)은 정연을 경계하고, 그들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정연은 맨몸으로 진실을 파헤친다.
이영애는 “내가 두 아이의 엄마이니까 영화에서도 감정의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모성애보다는 인간애로 접근하려 했다”고 말했다. “모성애 이상으로 크고 넓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관객에게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 표현을 절제했다. “아이가 실종된 상황이라고 해서 엄마가 매 순간 미쳐 있어야 할까, 그래야만 관객이 온전히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걸까 고민했어요. 배우로서 극한에 다다른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그런 장면들은 다 걷어냈어요.”
절망을 견디다 못해 표정마저 잃어 버린 정연의 고통과 슬픔은 스크린을 찢고 고스란히 관객을 덮쳐 온다. 영화는 그런 정연을 끝끝내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세상의 무관심과 사소한 거짓은 때로 그 무엇보다 악하고 잔인하다. 세월호 참사와 염전 노예 사건 등 실제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들도 고통의 무게를 더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봐요. 2시간 동안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압축해 보여줘야 하니까요. 힘들더라도 한 번쯤 들여다봐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세상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은 이영애가 ‘나를 찾아줘’를 선택한 한 가지 이유였다. “아이들과 저녁 기도를 할 때 가장 첫 번째 주제는 늘 세계 평화예요(웃음). 너무 멀리 나간 얘기로 들리겠지만, 세계가 평화로워야 사회가 평화롭고 가정이 행복하잖아요. 아이를 낳고 변한 게 있다면, 나 자신뿐 아니라 사회를 고민하게 됐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 밝아야 하니까요.”
이영애는 가정을 꾸린 이후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성격도 둥글둥글해졌다. 그는 “모든 일에 여유가 생겼고 현재 주어진 삶에 감사하게 됐다”며 “나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영애는 최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소탈한 일상 생활을 공개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개설해 팬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 팬이라는 사실도 감추지 않는다. 이 또한 “결혼이 선물한 여유 덕분”이라고 했다. “일부러 신비주의 콘셉트를 내세웠던 건 아니에요. ‘산소 같은 여자’라는 TV 광고 이미지, 조금은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겪는 변화는 아주 자연스러워요. 재미있잖아요. 많이 내려놓기도 했어요(웃음).”
올해 아홉살 아이들과 방송에 함께 출연하는 것도 그다지 꺼려하지 않는다. 이영애는 “딸 아이가 TV에 나오는 걸 좋아하고 출연 분량이 많으면 더 좋아한다”고 웃음 지으며 “아이들의 모습을 이렇게라도 기록해 두고 싶은 엄마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연기 활동을 하더라도 아이들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 2017년 방영된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는 아이들과 함께 보고 싶은 교훈적인 이야기라서 출연했다고 한다. 이영애는 “기왕이면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고,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고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친절한 금자씨’를 잊지 못하는 영화 팬들은 오랜만에 돌아온 이영애를 크게 반기고 있다. 앞으로 자주 스크린에서 만나기를 바란다. “오래 쉬었던 터라 저를 알아봐 주는 분들이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는데 환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껴요. 작은 응원들이 저에겐 큰 힘으로 다가와요. 아이들에게 아직 엄마 손이 필요한 시기이지만, 조화롭게 배우 생활을 이어가고 싶어요. 세월이 주는 경험과 고민이 연기에도 담길 거라 믿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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