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사별(死別)의 슬픔에 잠긴 도시에 산다. 차마 애도하기조차 조심스러운 온갖 이별이 매일 쌓이고 쌓여 모두의 말문을 턱턱 가로 막는다. “흙 쌓인 세월호 안에 갇힌 딸이 너무 보고 싶으니, 제발 아침에 눈 뜨지 않게 해달라 매일 기도한다”는 부모들. 현장에서 추락하고, 끼이고, 깔려 부서진 수 천명의 노동자와 유족들. 법과 제도의 부재로 황망한 안전사고를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과 가족들. 성희롱, 성폭력, 악플에 시달려 생을 등진 배우나 가수의 가족과 지인, 팬들. 더 나열할 사연은 수두룩하다.
간절히 원했던 삶을 빼앗긴 이들과 남겨진 이들은 특히 이 절명이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사실에 고통 받는다. 한국사회를 부유하는 이런 미결(未決)의 ‘유가족 투쟁사’를 써내려면 단행본 몇 권을 엮어도 부족하다. 어느 시구가 무색하게, 이제 우리에겐 잔인하지 않은 계절이 없고, 잔인하지 않은 도시가 없다.
우리는 사투(死鬪)도 범람하는 도시에 산다. 곳곳에서 고통의 올림픽이 펼쳐지다 보니, 반드시 관철하고자 하는 호소는 죽은 이의 사연이나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말해야만 경청되는 비극에 우리는 놓여 있다. 굴뚝에 오르고, 지붕에 오르고, 철탑에 오르고, 교각에 오르고, 곡기를 끊고, 머리를 깎고, 영정 사진을 들고, 눈물로 호소한다. 그래야 비로소 언론 국회 정부 사법부는 관심의 한 켠을 내어준다. 그렇게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야, 모두는 온갖 사별과 사투가 범람하는 슬픔의 바다에서 슬그머니 모습을 감췄던 정치의 부재를 통감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최근 “죽기를 각오한 투쟁”을 다짐하며 이 사투의 바다에 명함을 내밀었다. 그의 건강상태는 급격히 악화했다. 25일에는 “안경테를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우려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 사투에 전례 없이 쏟아지는 비판은 완전한 냉소에 가깝다. 급기야 21일에는 한국당 미디어특위가 “여야4당과 언론이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폄하하고 조롱하며 희화화하는데 열을 올린다”고 항의할 정도다. 내용을 다 옮기기 민망할 정도다. 문제는 이런 냉소가 쏟아지는 까닭이다. 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과 언론들이 각박해지고, 인간성을 상실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잃어버렸기 때문일까. 다들 인정머리를 상실한 것일까.
황 대표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이 가장 많은 사람 중 하나다. 매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입만 떼도, 정치협상회의에 참석해 4당 대표를 향해 한 마디라도 하면, 하고픈 말이 삽시간에 전국을 뒤덮는다. 입법권을 갖는 헌법기관인 한국당 의원 108명도 황 대표를 바라보고 있다. 그 중 무려 90명은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당대표 지시라면 비를 맞으며 야외 비상의총에 참석하는 충정을 보인다. 이 가용자원을 모두 끌어 모아 정확한 문제 진단, 전문성 있는 견제, 합리적 대안 제시를 하는 대신 삭발, 단식, 장외 투쟁을 이어가는 까닭을 많은 시민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특위의 말마따나 본디 사투는 이렇게 조롱 받아도 되는 일이 아니다. 바라만 봐도 명치가 아리고, 정신이 멍하고, 말문이 막히고, 코가 찡해 마음이 동하는 무엇이어야만 한다. 5월 광주 전남도청에서의 사투가 그랬고, 홍콩 이공대를 지키는 학생들의 사투가 그렇다. 최후의 보루가 그 소중한 목숨뿐인 모든 이들의 투쟁이 그렇다.
김세연 의원이 “존재 자체가 민폐”라며 해체를 주장한 한국당의 재건은, 어쩌면 이번 단식이 왜 뜨거운 격려 대신 냉소의 대상이 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더 시급한 과제는 하루바삐 이 위험한 단식을 마무리할 퇴로와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일이다. 지금 여의도에 모자란 것은 결사항전이 아니라 매력적인 야당과 이를 두려워하는 여당이다.
김혜영 정치부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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