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협상 답보에 대화 의지 접고 내년 핵ㆍ미사일 도발 유턴할 수도
북한이 금강산 내 남측 시설에 대한 일방적인 철거 방침에 이어 서해 접경지역에서 해안포 사격을 실시하며 남북관계를 실낱같이 이어주던 남북 간 군사합의마저 발로 찼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정한 ‘연말’을 한 달 여 앞두고 한미를 동시에 압박하는 의도라는 해석과 동시에, 북한이 대화 의지를 접고 내년 핵ㆍ미사일 도발 재개를 포함한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사전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직접 방문해 해안포 중대 2개포에 사격을 지시한 창린도는 우리 서북 5도에 인접한 곳이다. 남북이 지난해 9ㆍ19 평양 정상회담에서 맺은 군사분야 합의에 따르면 남한 덕적도로부터 북한 초도 사이 135㎞에 이르는 해역은 적대행위 금지 구역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최고지도자 현지지도는 계획적으로 실시된다”며 “북한은 창린도가 군사합의에 따른 적대행위 금지 구역이라는 점을 고려해 사격을 실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격이 연평도 포격 사건 9주기(11월 23일)에 맞춰 이뤄졌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처럼 의도적이고, 기습적인 도발의 의도는 복합적이다. 우선 미국을 설득해 대북제재 완화를 이끌어내지도, 남북관계의 독자적인 공간을 창출해내지 못한 우리 정부에 대한 강한 불만이 읽힌다. 지난달 23일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 철거 지시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지 않자, 우리 정부가 사실상 ‘남북 간 불가침 선언’이라고 포장하며 최고의 성과라 꼽는 군사합의마저 무력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금강산 등 과거 정부 합의 파기→9ㆍ19 군사합의 등 현 정부의 성과 파기→남북 대치국면 복원 단계를 단계적으로 밟고 있다”고 했다.
대미 압박의 성격도 엿보인다. 최근 북한은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 북미 비핵화 협상에 연관된 인사들을 총동원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협상은 없다’ 취지의 담화를 잇따라 발표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잡은 연말까지 (비핵화 협상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연말 딜레마’에 빠졌다”며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기 전까진 도발 수위를 계속 높여가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번 도발이 단순한 협상 카드 차원이 아니라 내년부터 대화가 아닌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더 이상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어렵다고 보고 남북 간 합의를 하나 하나 깨뜨리고 있는 것 같다”며 “다만 중국 반발을 고려해 즉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재개 등으로 되돌아가기보단 동창리 미사일발사장 보수 등 단계적으로 새로운 길을 밟을 공산이 크다”고 예상했다.
향후 관건은 미국이 연말 전에 북한에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전향적인 메시지를 전할지 여부다. 하지만 현재로선 미국 내부적으로 북미 대화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고, ‘나쁜 딜’(bad deal)보단 ‘노 딜’(no deal)이 낫다는 정서가 강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과감한 접근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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