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핀테크 강국으로 꼽히는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의 성장 전략은 ‘대형 금융사와의 협업’과 ‘액셀러레이터(창업 지원 기관) 투자 유치’로 대별된다. 국내외 고객 저변이 넓은 기존 금융사와의 협업은 핀테크 기술을 상용화할 시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스타트업 전용 펀딩 방식은 성장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릴지라도 업계 내 기술ㆍ정보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기본기를 탄탄히 다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공지능(AI) 전문기업 판다이(Pand.ai)는 대형 금융사와의 협력을 택한 대표적 사례다. AI 챗봇(온라인 채팅을 통한 고객 응대 프로그램) 분야에서 수많은 상담 내용을 데이터로 저장하고 이를 응용해 고객을 응대하는 ‘기억 유지 기술’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이 신생기업은 200년 전통의 영국 자산운용사 슈로더와 111년 된 싱가포르 최고(最古) 생명보험회사인 그레이트이스턴에 챗봇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12일 싱가포르의 슈로더 아태지사 사무실에서 만난 신위 추앙 판다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함께 디자인하고 창조하고 혁신하라(Co Design, Co Create, Co Innovate)’는 슬로건으로 자사의 성장 전략을 요약했다. 그는 “거대 금융사들은 뛰어난 판매ㆍ보안 인프라는 있지만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이 빈 공간을 우리 같은 스타트업이 채워주고 협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앙은 이를 통해 스타트업이 얻는 최대 소득으로 ‘시장 진출’을 꼽았다. 그는 “4차산업 혁명 시대엔 소비자 행동이 급변해 3개월 뒤조차 감히 예측할 수 없다”며 “대형 금융사를 통해 우리 기술을 계속 시험하고 활용하면서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대형 금융사들은 ‘혁신’을 얻는다. 샬럿 우드 슈로더 글로벌 핀테크 책임자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핀테크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해 어떤 시도가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실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멩시옹 탄 그레이트이스턴 디지털비즈니스 부사장은 “우리는 100년이 넘은 회사다 보니 일하는 방식이 아무래도 구식”이라며 “판다이 같은 핀테크 선구자를 만나 새롭게 일하는 방식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핀테크 스타트업끼리 생태계를 조성하는 전략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블록체인 전문 엑셀러레이터 트라이브(TRIBE)는 스타트업 초기 투자 기관인 동시에 블록체인 분야 스타트업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는 곳이다. 이들은 싱가포르 내 스타트업 정보를 관리하면서 서로 필요한 업체들을 연결하고 구인 시스템을 제공한다. 또 저스트코(JUST CO)라는 공유오피스를 운영하며 오프라인 교류의 장도 제공한다.
지난 13일 저스트코에서 만난 라이언 추 트라이브 관리이사는 자사를 ‘중립적인 투자ㆍ네트워크 플랫폼’으로 소개하며 “갓 창업한 업체부터 기업공개(IPO)에 나서려는 회사까지, 블록체인 기업 사이에서 정보 교류와 협업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포춘 500대 기업에 선정된 곳에 트라이브 고객사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세계적 투자와 협업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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