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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머니 속 ‘론스타 스캔들’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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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머니 속 ‘론스타 스캔들’ 사실일까?

입력
2019.11.23 10:00
수정
2019.11.2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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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11년 론스타 ‘외환은행 먹튀’ 논란 다룬 영화 ‘블랙머니’

영화 블랙머니에서 금융위원회 위원으로서 2011년 당시 금융당국의 대한은행(실제 외환은행)의 매각 결정 사실을 알리고 있는 변호사 김나리(이하늬 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영화 블랙머니에서 금융위원회 위원으로서 2011년 당시 금융당국의 대한은행(실제 외환은행)의 매각 결정 사실을 알리고 있는 변호사 김나리(이하늬 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론스타는 2012년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외한은행 매각 지연의 책임을 물어 5조원대의 투자자-국가 간 국제소송(ISD)을 제기했다. 소송에 질 경우 국민의 세금으로 물어야 한다. 이 사건은 진행 중이며, 지금까지 구속된 사람은 없다.’(영화 ‘블랙머니’의 엔딩 자막)

지난 13일 개봉한 영화 블랙머니는 2003~2011년 미국계 투자자본인 론스타(극중 스타펀드)의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 인수ㆍ매각 과정을 둘러싼 검찰ㆍ금융당국ㆍ금융권의 막후를 다루고 있다. 영화 제목인 블랙머니(검은 돈)는 이들 사이에서 유통된 범죄 수익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 실제 일어났던 굵직한 경제ㆍ금융 사건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하는 구조는 1997년 외환위기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지난해 11월 개봉)과 닮은 꼴이다.

◇사회적 관심 속 흥행 행진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 치곤 흥행 실적이 나쁘지 않다. ‘겨울왕국2’의 개봉 여파로 예매율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개봉 열흘 만에 관객 수 154만명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부러진 화살’(2011년) ‘남영동1985’(2012년) ‘천안함 프로젝트’(2013년) 등 사회적 이슈를 영화로 제작해 온 정지영 감독의 작품이란 점에서 관심이 뜨겁다.

영화는 자살 사건의 가해자로 누명을 쓰게 된 열혈 검사 양민혁(조진웅 분)이 우연히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얽힌 거대한 범죄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세상에 폭로하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극중에서 스타펀드(론스타)는 자산가치가 70조원에 달하는 국책은행인 대한은행(외환은행)을 1조7,000억원이라는 헐값에 사들였다. 현실에서도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3,800억원에 매입한 바 있다. 이는 ‘헐값 매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 속 사실, 실제와는 차이

그러나 외환은행의 자산가치로 알려진 70조원에는 수십조원의 부채도 포함돼 있어, 실제 순자산 규모는 많아야 수조원대였을 거라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시 외환은행은 부실 경영과 자금조달의 어려움 등으로 주가가 대폭 떨어져 있었다”며 “해석이 분분할 수 있지만, 자산가치가 70조원이었다고 보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2011년 외환은행을 매각한 론스타는 9년 새 최소 4조원 이상의 차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져 외국계 투기자본의 ‘먹튀(먹고 튄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당시 금융감독원 고위 간부가 헐값 매각에 가담한 것으로 영화는 묘사하지만 사실과 차이가 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당시 금융감독원 고위 간부가 헐값 매각에 가담한 것으로 영화는 묘사하지만 사실과 차이가 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외환은행이 매각됐던 이유는 은행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돼 부실 금융기관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매각을 통해 신규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영화는 ‘모피아(옛 재무부의 약칭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 세력이 금융감독원 직원을 동원해 외환은행의 재무건전성을 조작한 것으로 설정했다. 극중 불륜관계에 있는 금감원ㆍ외환은행 직원이 짜고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실제보다 더 나쁘게 조작하는 식이다. 그 결과 외환은행 매각의 정당성이 부여됐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사건 당시 외환은행이 금감원에 팩스로 보고한 BIS 비율은 합리적 근거에 기반해 산출된 추산치였는데, 실제로 외환은행의 BIS 비율이 악화되고 있어 매각이 시급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범죄사실 은폐를 목적으로 사건과 연루된 금감원ㆍ외환은행 직원이 의문사를 당한다는 내용 등은 허구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제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들이 사건 이후 사망하긴 했지만 모두 사건과 관계 없는 사인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처럼 론스타 인수ㆍ매각 과정의 배후가 외국계 자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검은 머리 외국인’ 의혹도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검찰 수사 결과 관련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다. 론스타 사건 수사를 검찰 수뇌부가 덮었다는 것도 근거가 없다.

◇론스타 사건, ISD로 ‘현재 진행형’

영화는 시작부터 줄거리가 픽션임을 밝히고 있지만, 영화관을 나온 관객들은 “현실은 더 암담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라는 게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2년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매각을 방해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정부를 상대로 5조원대 규모의 ISD를 제기한 상태다. 7년째 소송이 진행 중이며, 패소 땐 거액의 혈세가 지출될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 영화를 관람한 참여연대ㆍ금융정의연대ㆍ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들은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 대한 재조사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영화가 허구라고 해도 몰입감이 큰 이유는 일정 부분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고위 간부로 재직 당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사례를 비롯해 현실 세계 모피아의 스캔들은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범죄와 비슷하다. 금융범죄를 다룬 영화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한 이유는 그래서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영화 블랙머니 포스터.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영화 블랙머니 포스터.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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