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살 때의 일이다. 주재원이 된 남편 때문에 잠시 미국으로 이주한 친구의 가족이 집을 방문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친구 아들이 집에 오자마자 건넨 첫마디가 “아줌마, 여기 몇 평이에요?” 였다.
그때까지 한 번도 불려보지 못한 ‘아줌마’라는 호칭이 첫 번째 충격이었고, 그때까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아파트 평수 질문을, 그것도 아이에게서 들은 게 두 번째 충격이었다. 민망해하는 친구를 보며 “아줌마는 평이 뭔지를 몰라서 답을 못하겠네”하고 상황을 서둘러 정리했다. 아이들의 옷, 신발부터 시작해 과외활동 심지어 생일파티까지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야단법석을 떠는 뉴요커들 속에서 살았지만 평수는 처음 접한 질문이었다.
뉴욕 생활 후 옮겨 간 노르웨이의 오슬로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의 같은 반 친구 생일파티가 있었다. 보통 노르웨이에서 부모는 생일파티에 가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초대받은 자리인 데다 아이가 노르웨이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던 때라 파티에서 그 집 부모를 도와주며 머물렀다. 15명의 남자아이들이 어울려 놀다가 식사가 준비되자 다들 식탁에 앉았다. 메뉴는 핫도그. 핫도그는 노르웨이인들이 가장 간편하게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다. 그냥 따뜻한 물에 소시지를 담갔다가, 핫도그 빵이나 노르웨이 전통 팬케이크 룸파에 싸 먹는다. 집에 마땅한 저녁거리가 없을 때도 간편하게 먹는 음식이다.
여튼 케이터링까지 불러 난리를 떠는 뉴욕식 생일파티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핫도그 식사가 끝난 후에는 집에서 만든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아이들은 알아서 놀다가 두 시간이 지나면 사탕이 몇 개 든 봉투를 하나씩 받아서 돌아간다.
이 집만 생일파티를 간단하게 하는 줄 알았더니, 이후 초대받은 모든 생일파티가 비슷했다. 좀 다른 게 있다면, 핫도그 대신 햄버거나 피자를 준다든지 집 안 대신 집 앞 공원에서 논다든가 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핫도그는 가장 많이 제공되는 메뉴였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생일파티 형식이 간혹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그 검소함은 이게 생일파티가 맞나 싶을 정도였던 적이 많다.
생일파티를 하는 데는 규칙이 있었다. 반의 모든 친구를 초대하지 않으면 생일파티는 금지돼 있다. 다 초대할 수 없다면 최소한 남자아이들은 같은 반의 모든 남자아이를, 여자아이들은 같은 반의 모든 여자아이를 초대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빠지는 생일파티는 안 된다.
생소한 경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똑같은 양말, 모자 등을 쓰고 있어서 어쩌다 바뀌어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대체로 북유럽의 SPA 브랜드 옷을 입는다.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등골 브레이커’라 불릴 만한 옷을 입고 학교에 오는 아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 행사도 비슷하다. 1년에 몇 번, 아침에 학부모들이 모인다. 이메일로 각자 아침거리로 무엇을 가져올지를 정하는데, 보통 식빵 하나, 잼 하나, 삶은 계란 몇 개, 이런 식이다. 아무리 물가가 비싼 오슬로에서도 절대 만 원을 넘을 수 없는 것들이다. 가끔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북유럽 예찬을 정말 싫어한다. 하지만 북유럽에서 마음에 드는 한 가지가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런 배려를 꼽는다. 아이들에게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북유럽 어른들의 배려는 존경하고 배워야 한다. 북유럽도 자본주의 사회고, 모든 자본주의 사회에는 빈부 격차가 있다. 우리 모두가 다 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체감하고 배울 일은 아니다. 며칠 전 초등학생들이 ‘이백충’ 등의 언어를 쓴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봤다. 과연 아이들만 탓할 수 있을까. 다 우리 어른들의 잘못 아닐까.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GSB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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