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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세심한 맛] 따뜻한 요리에 감칠맛 펑펑... 찬바람 녹이는 치~즈

입력
2019.11.23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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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수프 위에 감칠맛을 내주는 그뤼예르 치즈를 듬뿍 얹어 끓이면 겨울 추위가 무섭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양파 수프 위에 감칠맛을 내주는 그뤼예르 치즈를 듬뿍 얹어 끓이면 겨울 추위가 무섭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미남 스타는 좋지만 그가 광고하는 제품은 영 못마땅하다. 한국 5대, 아니 3대 미남을 꼽는데도 자리를 차지할 미남 연기자가 광고하는 치즈 말이다. 치즈가 쭉쭉 늘어난다고, 대체 어디까지 늘어날 거냐고 그는 경탄한다. 광고를 보는 나의 마음은 서글프다. 이렇게 잘생긴 스타가 그저 쭉쭉 늘어나는 게 장점인 치즈의 광고에 동원되어야 할까. 그런 제품이 과연 진짜 치즈이기는 할까? 조금 엄한 잣대를 들이대자면 이런 치즈는 진짜가 아니다.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녹인 뒤 유화제나 증점제 등을 섞어 얇게 펴 굳힌 가공치즈(Processed Cheese)이다. 

역시 이성적인 접근이라 볼 수는 없지만 ‘생’이나 ’자연’, 한 술 더 떠 ‘천연’을 강조하는 한국 식음료의 세계에서 ‘가공’이라는 딱지가 붙은 음식이 압도적으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강한 표현을 쓰자면 가공치즈가 마피아 같은 범죄 조직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가공치즈의 기술이 100년도 더 전인 1911년에 개발되었으니 나름의 연륜을 자랑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기원전 2000년의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진짜 치즈의 역사를 감안하면 새발의 피이다. 

대부분의 경우 특정 지역에서 특정 방법으로 생산한 치즈만이 고유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맛과 쓰임새에 따라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대부분의 경우 특정 지역에서 특정 방법으로 생산한 치즈만이 고유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맛과 쓰임새에 따라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게다가 세계는 해를 거듭할수록 진짜 치즈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어, 비단 장인이 소량 생산하는 고급 치즈(Artisan)뿐만 아니라 소위 공장 치즈마저도 첨가물을 빼고 기본 재료만 쓴 제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치즈가 가야 할 방향도 사실은 명백하지 않을까. 가공치즈 마피아의 물량 공세에 마음만이라도 넘어가지 않도록, 국내에 존재하는 진짜 치즈 가운데 다가오는 겨울에 특히 더 잘 어울릴만한 종류를 골라 살펴보자. 물론 여름과 겨울용 치즈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샐러드에 잘 어울리는 코티지나 리코타, 페타처럼 숙성을 거의 하지 않거나 조금만 한 부드러운 치즈는 빼고, 따뜻한 음식에 잘 어울리거나 감칠맛을 펑펑 쏟아내 주는 것들 위주로 살펴보자는 말이다. 

기원전 2000년의 이집트까지 거슬러 갈 정도로 치즈는 역사가 유구할 수 있는 건, 알고 보면 간단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치즈를 비롯해 빵ㆍ주류ㆍ초콜릿 등 인류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음식이 그렇다. 일단 박테리아를 더해 유당을 젖산으로 변환하고 양이나 송아지의 네 번째 위에서 추출한 응유효소(레넷)를 더해 단백질을 분리한다. 순두부처럼 몽글몽글하게 맺힌 덩어리를 응유, 남은 물을 유청이라 부른다(맞다, 유청 음료의 재료이다). 건더기, 즉 응유만 건져내 천 등에 싸서 눌러 물기를 짜내고 숙성시킨다. 비교적 단순한 재료와 제조 공정에 숙성, 즉 세월이 궁극적인 맛을 완성하는 음식이 치즈이다. 

엄청나게 다양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터넷 오픈마켓이나 마트, 백화점 등에는 돌아가며 맛을 보면 결코 심심하지 않을 만큼의 치즈를 판다. 따라서 이해와 기억이 쉽도록 분류가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대체로 지역에 기대어 지도를 그려 왔다. 치즈는 대표적인 원산지 명칭 보호(PDO, 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음식으로, 대부분의 경우 특정 지역에서 특정 방법으로 생산한 치즈만이 특정한 이름을 붙일 수 있도록 법으로 보호를 받는다. 그래서 국가 및 지역별로 치즈를 지도 위에 올려 놓으면 쉽게 기억할 수 있지만 맛을 비롯한 특성이 자동으로 딸려오지는 않기에 별도로 한 번 더 맛지도를 그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단계까지 이르면 ‘음식 하나 먹자고 이렇게 공부를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흥미가 떨어질 수 있기에, 이번에는 맛과 쓰임새를 중심으로 최대한 간단하게 살펴보자.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는 감칠맛이 뛰어나 샐러드 위에 살짝 뿌려도 음식 맛이 살아난다. 게티이미지뱅크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는 감칠맛이 뛰어나 샐러드 위에 살짝 뿌려도 음식 맛이 살아난다. 게티이미지뱅크

 ◇천연 조미료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혀졌건만 소위 ‘화학’ 조미료를 기피하다 보니 ‘천연’ 조미료가 인기이다. 새우나 멸치, 버섯 등 감칠맛의 주인인 글루탐산이나 핵산을 많이 함유한 식재료의 가루를 낸 제품이다. 결국 글루탐산이나 핵산을 농축해 적은 양으로 효율적인 감칠맛을 낼 수 있도록 화학조미료가 개발되었는데, 그래도 소위 천연조미료를 고수하겠다면 치즈에도 눈길을 돌려보자. 흔히 ‘치즈의 왕’이라 불리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치즈 가운데서도 감칠맛이 뛰어나 파스타나 샐러드 위에 강판으로 갈아 가루만 올리는 수준으로 써도 음식 맛이 확 도드라진다. 

이름이 말해 주듯 파르마를 비롯해 이탈리아 북부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서 만든 치즈에만 이 이름을 쓸 수 있는데, 전통적으로 풀만 먹인 소의 젖과 응유효소, 소금, 이 세 가지 재료로만 만든다. 기본 12개월은 묵혀야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고 36개월까지 숙성시킨 제품이 팔린다. 오래 숙성시킬수록 감칠맛이 진해지며 알갱이가 부슬부슬하게 부스러진다. 치즈의 왕답게 몸값이 만만치 않아 원칙적으로는 인접지역 롬바르디의 그라노 파다노(Grano Padano)를 대신 쓸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둘의 가격이 두드러지게 차이 나지는 않는데다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더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얽매일 필요는 없겠다. 

천연 조미료처럼 감칠맛이 뛰어난 ‘블루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천연 조미료처럼 감칠맛이 뛰어난 ‘블루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감칠맛 폭탄 

천연 조미료처럼 감칠맛이 뛰어나지만 가루 양념처럼 쓰지 않고 작은 덩이를 먹을 수 있는 치즈이다. 블루 치즈가 대표인데, 이름처럼 속살에 푸른 무늬를 지니고 있다. 푸른 곰팡이를 접종시켜 만들었기 때문인데 연질이라 크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짠맛과 감칠맛이 강해 과일이나 잼 등과 함께 먹어 ‘단짠’의 진수를 맛보거나 견과류를 곁들여 고소함을 한층 더 북돋울 수 있다. 로크포르(프랑스), 스틸튼 (영국), 고르곤졸라(이탈리아 등)처럼 여러 나라에서 같은 원리를 바탕으로 조금씩 다른 블루 치즈를 만들고 있으므로 돌아가며 먹어 미묘한 맛의 차이를 느껴볼 수 있다. 맛의 결은 조금 다르지만 프랑스의 연질 치즈 에푸아스도 깊고 진한 감칠맛과 된장 수준의 구수함을 맛볼 수 있다. 

연하며 고소해 가장 대중적인 ‘브리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연하며 고소해 가장 대중적인 ‘브리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버려진 이름 

한국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브리와 카망베르는 프랑스가 고향인 치즈이지만 버려졌다 싶을 정도로 이름을 보호받지 못한다. 이름을 얻은 브리 지역의 모(Meaux)에서 만드는 ‘모의 브리(Brie de Meaux)’를 뺀다면 오늘도 브리와 카망베르는 아무데서나 만들어 아무데서나 팔리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은 고무 지우개에 가깝도록 뻣뻣한 질감과 무표정을 자랑하니 권하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으니, 둘 다 가운데 층이 걸쭉한 액체에 가까울 정도로 부드럽고 연하며 고소한 가운데 카망베르의 향이 좀 더 강하다. 

고소함과 쌉쌀함이 돋보이는 ‘에멘탈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고소함과 쌉쌀함이 돋보이는 ‘에멘탈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부담 없는 고소함 

고다와 에담(네덜란드), 에멘탈과 그뤼예르(스위스)는 경질 치즈이지만 씹어 먹기 불편할 정도로 딱딱하지 않다. 또한 감칠맛보다 고소함이 두드러지는 한편 쌉쌀함도 살짝 깔려 있는 데다가 너무 짜거나 느끼하지 않아 단백질 간식으로 편하게 먹기 좋다. 프랑스의 콩테(Comté)도 이 부류에 속하는데 다만 단맛이 좀 더 두드러진다. 이런 종류의 치즈는 간식용으로 개별 포장되어 팔리니 정말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무엇을 고르더라도 결대로 찢어진다는 사실이나 자랑하는 스트링치즈보다 훨씬 맛있다.

짜거나 느끼하지 않고 식감도 살아 있는 ‘에담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짜거나 느끼하지 않고 식감도 살아 있는 ‘에담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치즈 멍석 

이 모든 ‘쭉쭉 늘어나는 치즈’ 사단의 핵심에 모차렐라가 있다. 모차렐라는 잘 녹는데다가 두드러지는 맛이랄 게 없어 음식에서 치즈의 멍석을 깔아 주는 역할로 쓰인다. 서양에서는 녹는 치즈, 즉 ‘멜터(melter)’로 토마토, 바질과 함께 카프레제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 말랑말랑한 생모차렐라를 눌러 숙성시키면 물기가 빠지면서 정말 지우개와 흡사한 질감의 치즈가 된다. 다만 멍석 자체가 재주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천연 조미료나 감칠맛 폭탄 같은 치즈를 올려 줘야 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한국의 쭉쭉 늘어나는 치즈 열풍에서 우리는 그저 멍석만 열심히 깔고 있는 셈이다.

토마토와 바질과 곁들이면 금상첨화인 ‘모차렐라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토마토와 바질과 곁들이면 금상첨화인 ‘모차렐라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숙성과 변신 

체다도 보호를 받는 이름이 아니다. 한 술 더 떠 가공치즈의 대부분이 체다 치즈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특히 치즈버거에 많이 쓰인다. 그래서 싸구려라 여긴다면 브렉시트(Brexit)로 정신없는 가운데서도 영국이 적극적으로 화를 낼 수 있다. 체다는 남서 잉글랜드 서머싯의 마을 이름을 딴 치즈로, 역사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준으로 유서가 깊기 때문이다. 체다 가운데서도 ‘빈티지(Vintage)’나 ‘머처드(Matured)’ 또는 ‘샤프(Sharp)’라는 수식어가 붙은 걸 고르면 또 다른 감칠맛 폭탄을 맛볼 수 있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처럼 체다도 오랜 숙성을 거치며 생긴 젖산 칼륨이나 아미노산 타이로신의 결정이 씹힌다. 

치즈 버거의 필수품 ‘체다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치즈 버거의 필수품 ‘체다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버거를 위한 대안 

체다를 바탕으로 만든 가공 치즈가 햄버거를 장악하고 있지만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 일단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가 고향인 몬터레이 잭(혹은 잭) 치즈가 있다. 18세기에 프란시스코 수사들이 만들기 시작했는데 데이비드 잭이라는 사업가가 유통을 맡아 ‘잭의 치즈’라 불렸었다. 미국에서 치즈를 가장 많이 만드는 위스콘신주의 콜비 체다와 섞어 ‘콜비 잭’을 만들기도 한다. 대체로 한 달 정도밖에 숙성을 시키지 않으므로 적당히 고소하고 짭짤하면서도 녹아 햄버거 패티에 얹어 녹이기에 안성맞춤이다. 

고소하고 짭짤하면서도 잘 늘어나는 ‘먼스터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고소하고 짭짤하면서도 잘 늘어나는 ‘먼스터 치즈’. 게티이미지뱅크

한편 원래는 알자스가 고향이나 미국에서 건너와 대량 생산 제품으로 자리를 잡은 먼스터(Muenster) 치즈도 몬터레이 잭과 흡사하게 적당히 고소하고 짭짤하면서 부드럽고 모차렐라(혹은 쭉쭉 늘어진다고 자랑하는 여느 가공치즈) 부럽지 않게 잘 늘어나 햄버거는 물론이고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에도 아주 잘 어울린다.  이런 종류의 치즈는 가공 제품이 아니면서도 비슷한 두께로 저며 달라붙지 않도록 사이사이에 종이를 끼워 넣어 팔린다. 따라서 직접 칼을 대는 번거로움도 없으니 가공 치즈와 작별을 고하고 싶을 때 선택할 수 있다. 

 ◇치즈 보관법  

애초에 우유를 장기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치즈이지만 그래도 맛이 떨어지거나 상하지 않도록 관리는 필요하다. ‘버거를 위한 대안’유의 치즈라면 대체로 포장 자체가 밀폐용기라 그대로 냉장 보관하며 쓸 수 있다. 그 외의 치즈는 대체로 포장이 일회용인데, 처음 포장을 뜯어 남은 건 플라스틱 랩으로 꼭 싸서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둔다. 가능한 여건이라면 먹기 한 시간쯤 전에 꺼내 온도를 좀 높여 주는 걸 권한다. 한편 치즈는 대체로 지방 함유량이 높은 식품이므로 냉동에 잘 견딘다는 점도 참고하자. 물론 냉동실에 넣기 전에 다 먹는 게 사람도 치즈도 훨씬 더 행복할 것이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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