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파괴 시도한다고 교실ㆍ직장이 달라질까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의 학급에선 학생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를 때 ‘님’자를 붙인다. 호칭을 높이니 존댓말도 써야 한다. “누구야, 연필 좀 빌려줘”가 아니라 “누구님, 연필 좀 빌려줄래요?” 하는 식이다. 담임 교사의 재량으로 1학기가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는 학급 규칙이다. 이 규칙을 어기면 칠판에 이름이 적히고, 이름이 일정 횟수 이상 적힌 친구는 방과후에 남아 교실 청소를 한 뒤 하교해야 한다.
담임 교사가 님 호칭 규칙을 도입한 이유는 쉽게 짐작이 간다.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지나친 경쟁이나 학교 폭력 같은 문제가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만큼 이렇게라도 해서 불미스러운 사건을 방지하겠다는 교사의 의지도 엿보인다. 학년 초엔 아이가 같은 또래 친구를 님이라고 부르는 게 너무 어색하고 이상하다며 툭하면 투덜댔는데, 학년이 끝나가는 요즘엔 나름대로 규칙에 적응했는지 불평이 쏙 들어갔다. 아이 말에 따르면 요즘엔 님을 안 붙여 불러서 칠판에 이름이 적히는 친구들도 줄었다.
그러나 교실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도 규칙은 여전히 부자연스럽다. 다른 반 친구들은 예전처럼 그냥 이름이나 별명으로 부르면서 같은 반 친구들만 높여 불러야 하니 말이다. 방과후 학교 밖에서는 규칙이 아예 무너진다. 규칙의 원래 취지대로라면 아이 반 친구들끼리는 학교 밖에서 만나더라도 서로 존댓말을 쓰는 게 맞다. 하지만 동네 다른 학교 또래들이 듣기엔 이상하다 못해 우스꽝스러운 탓에 자연스럽게 예전 호칭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교내 호칭을 바꾸자는 제안은 사실 서울시교육청에서 먼저 나왔다. 지난 1월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내 초ㆍ중ㆍ고교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서로의 이름에 님 또는 ‘쌤’ 등을 붙여 부르자는 방안을 내놓았다(사제지간 제외). ‘서울교육 조직문화 혁신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이 방침은 그러나 일선 학교들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결국 ‘학교 자율’에 맡기는 쪽으로 흐지부지됐다.
기업들은 더 일찍부터 호칭 바꾸기를 시도했다. 상무님, 부장님, 과장님처럼 위계가 느껴지는 직급 호칭 대신 임직원들 이름 뒤에 님 또는 ‘씨’를 붙여 부르거나 ‘프로’, ‘매니저’처럼 ‘덜 수직적’으로 보이는 영문 직함을 쓰는 식이다. 아예 외국처럼 각자 영어 이름을 만들어 부르는 기업도 생겨났다. 이 같은 호칭 변화가 정착하고 있는 기업도 있지만, 적잖은 기업에선 예전 호칭으로 되돌아갔다. 사내에선 바꾼 호칭으로 부르면서 회사 밖에선 기존 직급 호칭을 쓰기도 한다.
심리학 관점에서 호칭은 꽤나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호칭 하나로 사람들이 마음의 벽을 쌓기도 하고 허물기도 하니 말이다. 중년 여성이라면 누군가에게 ‘아줌마’라고 불리느니 차라리 ‘저기요’가 낫겠다 싶은 마음에 공감할 터다. 처음 보는 가게 주인을 뜬금없이 ‘이모’라 부르는 것 역시 ‘아줌마’나 ‘저기요’보다 상대방을 배려한 호칭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호칭을 대하는 심리는 한국과 미국이 다르고, 연장자와 젊은이가 다르다. 직급과 상관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데 익숙한 미국 기업인들과 달리 한국 직장인들은 상사의 이름을 부르는 게 여전히 부담스럽다. 또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 층보다 호칭 파괴가 더 어렵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대화 상대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호칭에 결정적인 역할을 맡겨왔으니 호칭이 애매하면 관계도 모호해진다.
이 모두가 호칭에 지역이나 시대 고유의 문화가 반영돼 있다는 방증이다. 문화심리학이나 진화생물학에선 문화의 변화가 유전적 진화와 비슷하다고 본다. 변화의 결과 자체는 매우 진보적이고 위력적이며 급격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결과가 드러나고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에는 수많은 요소가 영향을 미치며, 인위적으로 조절하거나 예측하기 어렵다.
학교나 기업들이 최근 시도하고 있는 일련의 호칭 파괴는 문화의 변화를 행정적,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방식이다. 호칭을 바꿔 부르도록 의무화함으로써 개인이나 사회에 내재돼 있는 문화에 뚜렷한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호칭에 존중이나 평등의 의미를 담으면 지나친 경쟁 의식, 수직적인 조직 분위기 등이 완화할 거라는 믿음이다.
몇몇 학교나 기업이 호칭을 바꾸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있지만, 교실과 직장의 문화가 기대만큼 달라질 지는 미지수다. 칠판에 적히는 이름이 줄었다 해서, 상사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해서 더 나은 학교와 직장이 되는 건 아니다. 문화의 진화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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