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캐리는 맨발로 서면 키가 195㎝에 달하는 거구의 남성이다. 부츠를 신기라도 하면 2m에 육박하는 스콧의 허리는 40인치, 다리 길이는 86㎝에 달한다. 매일 최소 3,000칼로리를 먹어 치우는 스콧의 몸무게는, 100㎏은 거뜬히 넘길 거라는 예상과 달리 겨우 50㎏을 넘는다. 스콧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부터 매일 0.5g씩 줄기 시작했다. 미스터리한 체중 감소보다 더욱 미스터리한 지점은, 스콧 몸이 물리적으로는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머니에 동전이 가득 든 무거운 파카를 입고 체중계에 올라서도, 9㎏짜리 아령을 손에 하나씩 들고 체중계에 올라서도, 체중계 위 숫자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스콧의 몸에 닿는 모든 것은 ‘무중량 상태’가 되고 만다. 사람마저도.
‘고도에서’는 공포 소설의 대가이자 세계적인 스토리텔러인 스티븐 킹이 지난해 할로윈데이 전날인 10월 30일에 출간한 장편 소설이다. ‘나는 전설이다’로 잘 알려진 SF작가 리처드 매드슨의 또 다른 대표작 ‘줄어드는 남자’(1956)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줄어드는 남자’가 애완 고양이와 거미에게 위협을 당할 정도로 실제로 몸이 작아진 남자 스콧의 이야기라면, ‘고도에서’는 몸의 외형은 그대로지만 중량만 사라지는 남자 스콧이 주인공이다.
‘줄어드는 남자’가 가족으로부터도 외면 당하고 아무도 찾지 못할 정도로 작아진 채 지하실에 떨어진 스콧의 난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고도에서’에서의 스콧이 겪는 어려움은 불가사의한 체중 감소 말고 또 있다. 옆집에 살며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는 레즈비언 부부 미시와 디어드리의 개들이 스콧네 잔디밭에 일을 보는 문제다. 개들의 배변 문제를 항의하러 이들을 찾아간 스콧은 “단지 서로 좋은 이웃으로 지냈으면 한다”는 스콧의 소심한 항의에 “좋은 이웃이라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우리도 잘 알고 있다”는 냉대가 돌아오자 당황한다.
미시와 디어드리가 지적하는 ‘좋은 이웃들이 저지르는 짓’이란 이런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우리 레스토랑을 많이 이용하지 않아요. 그이는 우리가 결혼한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하더군요.” 스콧 역시 처음에는 이들의 반응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날부터 “그 조개나 빌어먹을 레스토랑” 같은 동네 사람들의 조롱이나 농담이 귀에 자꾸만 거슬린다. 보수적인 공화당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동네에서,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는 레즈비언 부부란 “남들 모르게 하면야 뭘 하든 누가 신경 쓴다고”라는 핀잔을 듣는, 불편하고도 거슬리는 존재다.
스콧은 점점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과 닿으면 중량이 사라지는 점을 이용해 이들 커플을 동네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짠다. 이 와중에도 스콧의 몸무게는 매일 0.5g씩 줄어들지만, 스콧은 더 이상 그 문제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중량도 시간처럼 기본적으로는 한낱 인간이 만든 생각이 아닌가? 시계의 바늘, 욕실 체중계의 숫자, 그것들도 가시적인 영향력이 있는 비가시적인 힘을 측량하려는 수단에 불과하지 않나?” 소설 속 스콧의 질문처럼, 점점 가벼워지는 스콧은 레즈비언 부부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과 혐오마저도 깃털처럼 가벼운 것으로 만들어 날려버린다.
호러와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고도에서’는 심장을 옥죄는 공포 대신 인간에 대한 존엄, 증오와 혐오에 맞서 싸우는 용기, 그러면서도 재치와 다정함을 잃지 않는 거장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실제 스티븐 킹의 첫째 딸인 나오미가 성소수자 운동 활동가이자 동성 연인과 결혼한 레즈비언 부부이기도 하다. 책의 마지막 대목, 결국 0g이 되어 하늘로 떠오른 스콧이 황금빛 불꽃과 함께, ‘얼굴을 별들에게 향한 채, 지표면의 필사적인 손아귀를 벗어나 솟아오르는’ 장면은 짙은 여운을 남긴다.
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ㆍ진서희 옮김
황금가지 발행ㆍ204쪽ㆍ1만2,000원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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