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네브래스카-링컨대 연구팀이 2017년 미 전역에서 800명을 뽑아 정치가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 응답자의 38%가 정치를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꼽았다. 18%는 정치 때문에 수면장애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답해 정치가 신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응답자 5명 중 1명은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 때문에 친구관계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고,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응답자도 4%나 나왔다”고 밝혔다. 우리도 같은 조사를 했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듯싶다.
□ 무기력한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커지는 상황에서 제1야당 대표의 급작스러운 단식이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 황교안 대표 지지자들에게는 안타까움과 동정, 연민의 스트레스를, 반대자들에게는 짜증과 울화, 냉소의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목숨을 걸었다”는 황 대표의 단식을 지켜보는 국민들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과거 YS(김영삼)와 DJ(김대중)가 야당 지도자 시절 단식을 결행했던 ‘민주화’만큼 명분이 뚜렷하지도 않다.
□ 정치 경험이 없는 황교안이 자유한국당 대표가 되자 보수 진영에서는 당을 탈바꿈시켜달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황교안식 정치’로 진정한 보수의 철학과 가치를 제시해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장외 집회와 삭발, 단식이라는 구시대적 투쟁 방식에 집착했다. 부족한 정치 경험과 리더십을 비전과 소통으로 돌파하지 않고 지지층 결집에 유리한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뜬금없고 비전 없고 효과 없고 국민들의 바람도 없는’ 4무(無) 단식이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황 대표로서는 절박하지만 자칫 이정현, 조원진, 김성태 의원 경우처럼 희화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 프랑스의 전시내각 총리를 지낸 조르주 클레망소는 “전쟁은 너무나 중요해서 군인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자 군 출신인 샤를 드골은 “정치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정치인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다”는 말로 변주해 정계에 복귀했다. 사면초가의 암울한 상황을 헤쳐가려면 정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이 그에 걸맞은 능력과 책임감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카리스마와 통찰력, 설득력이 없으면 ‘벼랑 끝 정치’로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라도 주지 않았으면 한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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