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연말 시한은 북한의 인위적 설정”… 협상 파트너로 최선희 직접 거명
“북한이 도발적 조치로 돌아가면 이는 거대한 실수이자 기회 상실이다.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핵 문제와 관련한 논의는 협상 테이블에서 내려졌다고 본다.”(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교착 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을 놓고 북미 간 신경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양국의 실무협상 총괄 책임자들이 잇달아 서로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압박하고 나섰다.
비건 지명자는 20일(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 인준 청문회에서 북한의 도발 가능성과 관련해 “(북한이) 북미 외교 관계 형성 이전인 2017년의 극한 대립 상태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외교의) 창이 여전히 열려 있다”며 “북한은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건 지명자는 ‘창이 열려 있다’는 말을 다섯 차례나 반복하면서 “궁극적으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북한”이라고 공을 북한으로 넘겼다.
비핵화 협상 실패 가능성을 열어 둔 이 같은 언급은 “북한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연말 시한을 앞두고 연일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는 함의도 깔린 경고성 발언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비핵화 결단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는 “우리는 북한이 비핵화 선택을 했다는 구체적인 증거, 검증 가능하거나 의미 있는 증거를 보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그들이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비건 지명자는 또 다른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그전에 “합의 혹은 최소 ‘합의에 가까운 것(near-deal)’이 있어야 한다는 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점이라고 전했다. 이는 정상회담을 위해선 실무 협상을 통한 진전이 선행돼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비건 지명자는 최선희 부상을 직접 거론하며 자신과 함께 협상에 나설 것을 공개 제안하기도 했다. 최 부상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임을 얻고 있는 ‘권한이 주어진 협상가’라고 믿는 비건 지명자는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아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비전을 어떻게 이행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최 부상은 북미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먼저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태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최선희 부상은 이날 비건 지명자의 발언에 앞서 모스크바에서 취재진과 만나 “미국과 앞으로 협상하자면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을 다 철회해야 핵 문제를 다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건 지명자의 청문회 이전 발언이지만 최근 북한 대미 외교의 핵심 관계자들이 돌아가며 ‘선(先) 적대시 정책 철회, 후(後) 비핵화 논의’를 촉구한 것과 같은 맥락이어서 북미 협상 재개까지는 앞으로도 양국 간 기싸움 속에 험로를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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