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 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원산갈마비행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9'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 1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간부들과 경기대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7일 오후 4시,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두마 구역의 한 빵집에 화학물질을 담은 통폭탄이 투하됐다. 이어 오후 7시30분 인근 순교자의 광장에 또 한 발이 떨어졌다. 시리아 내전 구호단체 ‘하얀 헬멧’은 트위터에 현장의 참혹한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고, 이를 본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대부분 어린이와 여성인 사망자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있었고, 이들의 코와 입에선 하얀 거품이 흘러나왔다. 시신들 틈에서 간신히 발견된 생존자들 역시 숨쉬기를 버거워했으며 동공이 축소되고 충혈된 눈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전형적인 화학무기 노출 증상이었다.

현지 반군 및 인권단체들은 즉각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정부군 소행이라고 성토했지만 시리아 측은 “반군 세력의 조작”이라며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이미 수 차례 화학무기 사용 전력이 있는 아사드 정권 편을 들어준 나라는 러시아와 이란뿐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주일 뒤인 13일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국가들이 시리아 내 화학무기 의심 시설 3곳에 대한 정밀 보복 타격을 실시했다고 밝히며 “화학 무기 사용은 인간의 행동이 아닌 괴물의 범죄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그럼에도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 정황은 계속 포착됐다. 미 국무부는 올해 5월에도 시리아 정부가 반군 거점인 북부 이들리브 지역에서 염소가스를 사용한 공격을 감행했다고 확인한 바 있다.

이런 아사드 정권에 화학무기 개발 기술과 물자를 제공한 것으로 지목되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지난해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유엔 대북제재위 소속 전문가들이 작성한 비공개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시리아로 내산성 타일과 밸브, 온도 측정기 등 화학무기 제조에 사용할 수 있는 이중 용도 물자를 보내온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기술자들이 시리아 바르제와 아드라, 하마 등에 있는 화학무기 및 미사일 시설에서 직접 일하기도 했으며, 그 대가로 북한은 핵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필요한 현금을 제공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서는 적시했다. 생물학무기(BW)에 대해서도 미 국무부는 ‘2019 군비통제ㆍ비확산ㆍ군축 이행 보고서’에서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고 이를 사용하기 위해 무기화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시리아 동구타 두마 지역에서 지난해 4월 8일 한 어린이가 산소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 시리아 민간구조대 '하얀헬멧'이 제공한 비디오 캡처. AP 연합뉴스
◇北, 세계 3위 생화학무기 보유국… 핵보다 위협적

생물ㆍ화학 무기는 대량살상이 가능한 비대칭무기로, 핵무기와 함께 ABC(AtomicㆍBiologicalㆍChemical)무기라고 불린다. 소량으로도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데 반해 제약회사나 비료공장, 살충제 생산공장 등 민간시설에서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생산할 수 있는 데다 증거인멸이 용이하고 사찰도 어렵다. 이 때문에 생화학무기는 빈국(貧國)이나 무장단체 지도자들에게 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가난한 자의 핵무기’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북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폐쇄적인 북한의 생화학무기 현황은 아직 상당 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파악된 내용만으로도 북한은 미국과 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의 생화학무기 보유국가로 평가된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화학무기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 현재 수십 가지의 화학무기를 2,500~5,000톤가량 저장하고 있으며 평시에는 연간 5,000톤, 전시에는 1만2,000톤까지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투발 수단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생화학무기는 첨단 탄도미사일이 아니더라도 박격포나 방사포, 야포, 무인기 등에 간단히 탑재할 수 있다. 화학무기 1,000톤은 4,000만명을 살상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만큼 단 한 발이라도 수도권에 떨어진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인명 피해를 발생시키게 된다. 미량의 생화학무기를 풍선에 실려 보내거나 상수도에 흘려보내는 단순한 방식으로도 순식간에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을 수 있고, 2017년 김정남 암살사건처럼 사고를 가장한 테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때문에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생화학무기가 핵무기보다 더 위협적이라고 경고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 국방부의 핵ㆍ화생방 담당 차관보였던 앤드류 웨버는 지난해 말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보고서에서 “북한은 핵보다 생물학적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며 “북한의 생화학무기는 발달돼있고, 과소평가돼있으며 매우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미 외교안보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NI)도 “한반도 유사시 북한은 생화학무기로 비무장지대부터 부산까지 남한 전역을 은밀하게 공격할 수 있다”면서 “결코 핵보다 덜 위험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2017년 2월 13일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내 진료소 의자에 뒤로 쓰러져 누워 있는 장면을 보도한 현지 매체들 사진. 정민승 특파원
◇화학 25종 생물 13종 보유… 비핵화 대상 포함될까

현재 북한은 생물무기 연구 및 배양ㆍ생산시설 17개소와 화학무기 관련 시설 16개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진 화학작용제는 25종으로 VX, 사린가스 등 신경작용제와 겨자 등 수포작용제, 포스겐 등 질식작용제, 시안화수소 등 혈액작용제, 구토ㆍ최루작용제를 고루 망라한다. 생물무기도 13종가량 보유 중이고 이 중 탄저균과 페스트, 콜레라, 천연두 등 4종 이상의 생물무기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한미 당국은 보고 있다.

비핵화 협상에 가려 저평가되던 북한의 생화학무기는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김정남 암살사건을 계기로 다시 주목 받았다. 암살에 사용된 VX는 화학무기 물질 중에서도 특히 치명적인 독극물로 꼽힌다. 신경작용제인 VX는 주삿바늘 한 방울에 해당하는 10㎎만 들이마셔도 즉사하는 파괴력을 지녔지만 혈액이나 질식, 수포작용제와 달리 독특한 증상을 보이거나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당시 김정남의 사인을 ‘심장마비’로 위장하기도 했던 북한 당국은 현재도 VX를 생산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생화학 무기의 위력을 몸소 체험한 국제사회는 1997년 4월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을 체결하고 화학무기의 개발과 생산, 보유, 획득, 비축, 이전, 배치 등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북한과 이집트, 남수단, 이스라엘은 CWC에 가입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북한의 생화학무기 보유량이 CWC에 가입한 미국과 러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은 그간 북미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서도 북측에 핵과 탄도미사일은 물론, 생화학무기까지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일괄적 폐기 약속을 요구해왔다. 지난달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7개월만에 재개된 실무협상 때도 미국은 이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북측 협상대표는 비핵화를 뛰어넘어 무장해제를 요구한 것이라 반발했고, 결국 협상이 결렬됐지만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양국 간 대화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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