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기 입단 피복 체촌으로 인하여 수업의 불참을 확인하오니” 수업을 듣는 학군사관 후보생(ROTC)의 출석 인정 요구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피복’이라는 말은 종종 들었지만 ‘체촌’이라는 말은 처음 보는 것이라서 낯설다. 뜻은 짐작되나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사전을 찾았다. 그러나 ‘체촌’은 두 개의 대표적 국어대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 말의 쓰임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더니 “교복 체촌이 뭐에요??”, “개개인의 체형적 장단점을 파악해 체촌을 진행한다”, “기초군사훈련 소개 자료 및 채촌 안내입니다”처럼 ‘체촌’과 ‘채촌’이 함께 쓰이고 있다. 한자로 ‘체촌’은 ‘體寸’으로, ‘채촌’은 ‘採寸’으로 표기된다. ‘피복 체촌’에서 ‘체촌’의 뜻은 ‘(옷) 치수 재기’ 정도다. 그런데 ‘體寸’은 뜻이 ‘몸의 치수’에 해당하고, ‘치수 재기’에 맞는 한자어는 ‘採寸’이다. 출석 인정 요구서의 ‘체촌’은 ‘채촌’의 잘못된 표기인 것이다.
‘체촌’과 마찬가지로 ‘채촌’도 국어사전에 없다. ‘채촌’은 일본말에서 쓰이는 것으로 ‘사이순(さいすん)’으로 발음된다. ‘의복 등을 새로 맞출 때, 몸의 각 부분의 치수를 재는 것’의 뜻이다. 처음 ‘채촌’이 의류 분야에서 쓰이다가 ‘채’와 ‘체’의 발음 혼란이 생기고, ‘몸 치수’라는 뜻에 집중하다 보니 ‘체(體)’가 들어간 ‘체촌’이 바른 표현인 것처럼 쓰이는 상황이다.
‘채촌’, ‘체촌’은 한글만 쓰기가 생활화된 지금은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말이 되었다. 군대, 경찰, 학교, 경기 단체 등에서 주로 쓰이는데, ‘체촌’, ‘채촌’ 대신 ‘치수 재기’나 ‘치수 측정’이라는 말을 쓴다면 소통이 쉽고, 뜻을 몰라 남에게 묻거나 사전을 찾는 시간 낭비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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