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 년 넘게 한국문학계 기둥 역할을 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2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10ㆍ끝> 최은미 ‘어제는 봄’ 
최은미 '어제는 봄'

우리는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상처받고 억눌리고 훼손당하거나 훼손한다. 또한 그것을 잊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최은미의 소설은 조서이면서 조사이다. 죄는 있어도 전과와 민원은 없다는, 수상한 자백이다. 문장은 독하게 벼려져 있고 거기 들어 있는 질문은 예민하고도 타당하다.  

이 작품에는 두 개의 봄이 등장한다. 엄마의 외도와 아빠의 자살, 누군가를 향한 살인 충동이 찾아왔던 스물세 살의 봄. 그리고 무명의 소설가로 살기 시작한 지 10년째, 아이를 낳은 지 10년째인 서른아홉 살의 봄. 

‘나’는 해마다 스물세 살의 봄을 다시 겪는다. 정작 엄마가 마치 평범한 엄마인 척하는 게 울렁거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 “좋아?” “살아 있으니까 좋으냐고.”

‘나’는 또 스물세 살의 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다. ‘우울과 분노와 혐오와 욕망을’ 감춘 선택이었다. 그리고 딸이 태어난다.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 동시에 아주 많은 이유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인 그 딸에게 자신의 어둠이 드리워질까 두려워하는 나는 어느 순간 어린 딸에게 소리 지르고 빈정대고 위협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독백한다. ‘나는 니가 얼마나 좋은지. 나한테 타격을 입는 니가. 내 말 한마디에 베이고 마는 니가 얼마나 좋은지 나는!’ 

‘나’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마음을 연다. 그를 만나러 가면서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 두 개를 바꾼다. ’울신랑’을 ‘윤지욱’으로 ‘우리딸’을 ‘윤소은’으로. 관계로 호칭되는 게 아니라, 개인 대 개인으로 재정립된다. 자신의 개인성을 관계로부터 독립시키는 순간이다.

그것은 욕망을 중심으로 엮어 가는 카르마의 연쇄고리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엄마, 새로 만난 남자의 엄마, 그리고 나 역시 그 외도의 연쇄에 속해 있다. 엄마의 남자, 그 남자의 아내, 그들의 딸과 나 또한 인연의 고리로 엮여 있다. ‘나’는 작가로서의 독립된 정체성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에는 삼십 대 엄마의 일상과 동선에 대한 정밀한 묘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가족관계와 결혼생활과 육아, 그리고 외도라는 설정이 익숙하게 느껴져 상투적이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인물들은 입체적이고 새로운 해석을 얻는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며 일방적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인물들. 증오가 깔린 의무적 관계 속에도 포근함이 있고, 죄의식과 방어기제가 부딪치고, 또 욕망이 이루어지려는 순간 거기에서 도망치는 전도된 정념이 있다. 관계의 상투적 맥락을 끊어내는 급진적 사유가 이 소설의 스케일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이 멋진 배신과 파국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정련된 단문이다. 자책과 분노라는 양가적 감정과 더없이 건조한 욕망의 여정을 유려하게 표현했다. 절제된 언어의 정갈함도 좋지만, 오래 눌려 있다가 마침내 터져 나오는 언어 또한 잘 계산된 격정을 품어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거둔다. 1인칭 소설의 장점과 중편소설 장르만의 완성도도 느껴진다. 클래식하면서도 시의적이다. 

은희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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